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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해안가에 자리 잡은 기호마을에서 부부는 굴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5일 아침, 그날 부부는 2층 휴게실에 올라 아침 햇살이 반사되는 잔잔한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조용한 바다였다. 그런데 그때, 부부는 동시에 수면 위를 떠다니는 기묘한 물체를 목격했다.
멀리 떠 있는 그것의 형체는 언뜻 보니 옷을 입은 마네킹인 것 같기도 했다. 해안가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발견하는 일은 이 마을에서 흔한 일이었기에 부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다시 1층의 일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어 휴게실로 올라온 순간, 부부는 다시 바닷가를 향해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발견했던 그 마네킹이 파도에 쓸려 해안가 가까이로 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숨이 멎을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부부가 마네킹으로 생각했던 물체는 바로, 여성의 사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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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를 접수한 통영해양경찰서 수사5팀은 즉시 현장으로 향했다. 젊은 형사 3인으로 구성된 수사팀이었다. 육지로 인양된 사체에는 훼손된 흔적이나 부패의 흔적은 거의 없었다. 단정한 옷차림도 그대로였다. 시신이 바다에 오랜 시간 떠다녔다면 부패가 진행되기 마련인데 시신의 상태로 보아 사망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상처라고는 왼쪽 머리에 긁힌 자국 하나였다.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나 소지품은 없었다. 다만 한 쪽 귀에만 귀걸이를 하고 있단 점이 특이했다. 이 사체와 관련해 알 수 있는 건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사체는 수면 위로 밀려왔지만 진실은 아직 수면 아래 잠겨 있었다.
세 명의 형사들은 시신과 관련이 있을 법한 물건을 찾으러 해안가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선착장 인근 주차장에서 숨진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을 찾아냈다. 형사들이 발견한 물건은 두 가지였다. 일단 푸른 알약과 하얀 알약이 든 두 개의 약통을 수거했고, 끊어진 여성용 시곗줄도 찾아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물 분석을 의뢰한 결과, 하얀색 알약은 단순한 소화제였지만 푸른색 알약은 수면제였다. 또한 시곗줄에서 사망한 여성의 DNA도 검출됐다.
지문 감식으로 사망한 여성의 신원은 곧 밝혀졌다. 사망자는 40대 초반의 여성 A 씨, 그녀의 주소는 통영이 아닌 서울 강서구 공항동이었다. 형사들이 육안으로 확인했던 것처럼 특별한 외상은 없었으며 사망 원인으로 익사의 가능성과 독극물의 가능성 두 가지가 모두 존재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통영의 바다에서 사체로 발견 된 이번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통영해양경찰서 수사5팀 팀장은 사건 초기부터 사망자의 행적을 분석했다. 단정한 옷차림과 외상 없는 깨끗한 시신, 그리고 시신 근처 발견된 수면제까지. 그는 A 씨가 서울에서 통영으로 이동 후 수면제를 복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수사팀이 A 씨의 휴대폰 번호로 통신사실 확인조회를 했는데 A 씨가 사용했던 휴대폰은 본인 명의가 아니었다. 그녀가 사용한 번호의 명의자는 B 씨로, 통영에서 멀지 않은 거제 옥포의 원룸을 주소지로 두고 있었다.
수사팀은 거제의 원룸을 찾아가 B 씨의 행방을 확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B 씨는 그 원룸에 살지 않았다. 형사들을 만난 집주인은 오히려 수사팀이 보여준 사진 속 그녀, 바로 숨진 A 씨를 가리키며 이 원룸에 살던 사람이라 증언했다.
수사5팀은 집주인의 협조로 원룸 안을 확인했다. 원룸 안은 수건부터 신발까지 모든 것이 반듯하고 차곡차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약봉투를 발견했는데, A 씨가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거제의 C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집 안 조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수사팀은 원룸 건물을 서성이는 한 중년여성과 마주쳤다. 평범한 중년여성에게 형사들의 예리한 촉이 발동되었다. 과연 맞았다. 중년여성은 숨진 A 씨가 일하는 가게의 주인이었고 A 씨가 심한 수면장애를 앓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7월 4일 새벽에 퇴근한 이후 A 씨가 출근을 하지 않자 걱정되는 마음에 집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형사들은 이 사건을 단순 자살로만 보지 않고 좀 더 집중적으로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B 씨를 추적해보니 그녀는 과거 A 씨의 직장동료였고, 신용불량자였던 A 씨를 위해 휴대폰 개설 등에 필요한 명의를 빌려주었던 것으로 나왔다.
다음으로 형사들은 A 씨의 통신기록을 조회해 7월 4일 퇴근 이후의 이동 경로를 파악했다. A 씨는 7월 4일 새벽 퇴근 이후 곧장 어디론가 떠났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대구였다.
대구에는 A 씨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고, 그때 A 씨는 본인이 가입한 몇 가지 보험의 수령인을 남동생 명의로 바꿔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타살을 의심했던 형사들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오랜만에 가족을 방문하고, 보험수령인을 바꿔놓는 행동은 자살자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결국 수사5팀의 세 명의 형사들은 A 씨의 사체가 발견된 기호마을에 다시 가 CCTV를 찾아보고 이 사건을 결론 내기로 했다.
기호마을은 마을의 출입구가 외길이었다. 즉, 들어간 사람은 다시 똑같은 길로 되돌아 나와야만 하는 코스였다. 만약 A 씨가 그 길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면 바다에 뛰어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었다.
형사들은 한여름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7월 5일 자정이 넘어 한 여성이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택시기사를 찾아 확인했더니 당시 택시를 탔던 손님은 여성이 아니라 반바지를 입은 남성이었다. 늦은 밤인 데다가 CCTV의 화질이 좋지 않다 보니 체격이 작은 남성의 실루엣을 여성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형사들은 허탈한 얼굴을 하고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건은 자살로 종결될 듯 보였고 수사는 이제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했다. 그러나 그때, 막내 형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근처에 있는 CCTV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얼마 후,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온 막내형사가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굴 가공 공장 CCTV에서 마을 입구가 아주 잘 보인다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곧장 공장 부부의 협조를 얻어 공장의 CCTV 영상을 돌려보았다. 마을 생활에 익숙한 부부인지라 영상 속 차량들의 번호판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마을 주민들의 차량과 외지인의 차량을 구별해 주었다. 그러던 중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하나의 차량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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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새벽 4시, 폭우가 쏟아지는 어두운 도로 위로 낯선 SUV 한 대가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약 30분 후인 4시 30분에 차량은 다시 마을을 빠져나갔다. 해당 차량은 렌터카였다. 형사들은 빠르게 렌터카 대여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렌터카를 빌린 사람은 다름 아닌, 사망자 A 씨가 다니던 병원의 원장 D 씨(50대 후반, 남성). D 씨의 신원이 확인되기 전까지만해도 이 사건은 자살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형사들은 타살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D 씨가 빌린 렌터카에 블랙박스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렌터카 내부를 조사하던 중 작은 귀걸이 핀 하나를 발견했고 A 씨가 착용하던 귀걸이와 제품 일련번호가 일치한 것으로 나왔다.
D 씨와 A 씨의 관계를 의심하던 형사들은 즉시 D 씨의 병원이 있는 건물을 찾았다. 어쩌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병원 건물의 7월 4일자 CCTV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해당 날짜의 CCTV 영상은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어 있었다. D 씨였다. 건물주는 D 씨가 CCTV 삭제를 요청해오자 처음엔 망설였지만 결국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D 씨는 곧 전문 기술자를 불러 해당 영상을 삭제하였는데, 다행인 것은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건물주가 D 씨가 영상을 삭제하기 전 해당 장면을 미리 봐두었다는 점이다. 건물주가 본 영상 속 병원장 D 씨는 무게가 상당히 나가 보이는 어떤 물건을 차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
형사들은 삭제된 CCTV 영상을 복구할 수 있는지 국과수에 의뢰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중요한 순간을 포착한 영상은 영원히 사라졌고 D 씨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아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형사들은 D 씨를 둘러싼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 A 씨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인물들을 추적했다. 그중 한 명, C 병원에서 근무하던 전직 간호사가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숨진 A 씨는 수면장애 환자 중에서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프로포폴 앰플을 한 통만 맞아도 한 시간을 잠드는데 A 씨는 10분이면 깨어났다. 그래서 A 씨는 더 많은 양의 프로포폴을 요청했고 D 씨가 이를 허용해왔다는 것이다. 형사들은 병원의 진료기록을 확보해 A 씨가 받았던 처방 내역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어디에도 프로포폴 처방 기록은 없었다. 즉, 병원장 D 씨가 공식적인 기록 없이 A 씨에게 프로포폴을 투여했다는 뜻이었다.
형사들은 이어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해당 간호사가 퇴직한 후, 7월 4일 병원에는 새로운 간호사가 채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즉, 그날 A 씨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병원장 D 씨뿐이었다. 더구나 D 씨는 7월 4일자 진료실 CCTV를 이미 삭제한 상태였다. 마치 그날 무언가 감춰야 할 일이 있었다는 듯 모든 상황이 맞춰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형사들은 주사실 CCTV 영상을 확보했다. 형사들은 긴장 속에서 복구된 영상을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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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병원장 D 씨는 주사실 냉장고를 열어 프로포폴 원액을 꺼냈다. 그는 침착한 손놀림으로 주사기를 준비한 뒤, A씨의 발 정맥에 직접 주사를 놓았다.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A 씨는 반응이 없었다. D 씨는 초조한 듯 그녀를 흔들어보았지만 A씨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놀라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D 씨의 얼굴표정까지 영상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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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 D 씨는 해양경찰 수사5팀에 체포된 후에도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결국 형사들이 주사실 CCTV 영상을 그의 눈앞에 내밀자 체념한 듯 자백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A 씨의 혈압이 너무 낮아 프로포폴을 투약할 수 없었지만 A 씨의 요청을 거절하기 못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는 병원을 개업하며 진 막대한 빚이 있었고 해당 사건으로 유족들과 합의까지 해야 한다만 파산은 불 보듯 뻔했다. 결국 D 씨는 사체를 유기하기로 했다.
수사5팀 형사들은 D 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사체유기,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형사들의 끊임없는 의심이 아니었다면 A씨의 죽음은 그저 또 하나의 불행한 자살 사건으로 남았을 것이다. 형사들은 이번 사건으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진실은, 끝까지 파헤치는 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