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9화) 형사 M, 3년간 베트남인 마약 공급책 을 쫓다

목포 시내에서 벌어진 마약파티
외국인 클럽에서 잡힌 베트남인
엑스터시 거래 현장 급습해…
공급책, 판매책 모두 검거 완료

 

 

목포해양경찰서 외사계 형사 M이 그 첩보를 처음 들은 건 2021년이었다. 첩보의 주요 내용은 “캔디”. 달콤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불법체류 중인 베트남 노동자들 사이에서 마약 ‘엑스터시’가 돌고 있었고 캔디는 엑스터시를 일컫는 은어였다. 형사 M은 첩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형사 M은 먼저 마약공급책을 노렸다. 목포를 포함해 전남 서부 지역 일대에 마약을 퍼뜨리는 인물이었다. 형사 M은 어렵게 목포 구시가지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A 씨(남성, 20대 중반)의 SNS를 알아내고 그의 얼굴을 특정했다. 하지만 A 씨가 불법체류자 신분인 만큼 거주지를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형사 M과 동료 형사들은 현장 잠복을 시작했다. 형사들은 목포 구시가지 골목에 몸을 숨기고 A 씨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며칠, 드디어 A 씨를 발견했다.

 

형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그의 뒤를 밟았고 A 씨의 거주지로 보이는 곳도 확인했다. 형사 M은 A 씨의 체포영장을 갖고 있었지만 디데이를 기다렸다. A 씨가 마약을 거래하는 현장에서 체포해야 구속을 확실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떤 형사 M에게 뜻밖의 제보가 들어왔다. 다가오는 5월 5일이 A 씨의 생일인데, 5월 4일 목포 구시가지에 있는 베트남인 전용 외국인 클럽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잘하면 마약 일당을 한꺼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현장에서 A 씨를 체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A 씨와 함께 마약 거래에 연루되어 있는 클럽 여주인까지 검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5월 4일 밤, 목포 시내의 어두운 골목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해양경찰서 외사계 형사들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특공대 10여 명이 목포 시내에 있는 외국인 클럽을 에워쌌다. 이 외국인 클럽은 문이 이중으로 감겨있고 한국인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수사팀은 무리하게 진입하지 않고 자정이 넘어 5월 5일이 될 때까지 바깥에서 쥐죽은 듯이 기다렸다. 파티가 끝나고 문이 열리는 때를 틈타 현장으로 돌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의 예상과는 달리 클럽의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형사 M은 계획을 변경해 작전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특공대가 앞장섰고, 클럽의 잠긴 문을 강제로 뜯어냈다. 경찰이 들이닥친 클럽 내부는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술과 마약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가운데, 특공대는 모든 출구를 봉쇄했다.

마약 사범들을 가둬둔 채 형사 M은 팀원들과 함께 마약 투약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입시간이 늦어져서일까. 테이블 위엔 빈 술병들만 굴러다닐 뿐 아쉽게도 마약은 발견되지 않았다. 겨우 마약 투약기구 몇 개를 찾아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은 현장에서 32명을 마약투약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발견됐던 것이다.

그건 하나의 영상이었다. 형사들이 들이닥치기 전, 한창 파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누군가 파티 현장을 촬영했고, 그 영상 속에는 엑스터시 등의 마약 투약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한편 형사 M은 수많은 베트남인 중에서 술에 잔뜩 취해서 의자에 기대어 있는 A 씨를 찾아냈다. SNS에서 보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사 M은 A 씨를 마약 판매 혐의로 체포했다. A 씨는 취한 중에도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이후 형사들이 A 씨의 주거지를 찾았다. 집안에 숨겨둔 마약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봐도 마약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공급책 A 씨의 체포가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형사 M은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어렵게 A 씨를 찾아내 특정하고 디데이까지 기다려 작전에 성공했는데 정작 A 씨는 눈앞에서 놓칠 위기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열고 A 씨의 집에 들어오다가 낯선 형사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A 씨의 친구였던 두 사람은 파티 중간에 먼저 자리를 뜨는 바람에 해양경찰청 형사들과 특공대가 현장에 들이닥쳤다는 소식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형사들을 마주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형사 M의 눈에 그중 한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은색 가방이 들어왔다.

가스레인지 케이스였다. 요리를 할 때 흔하게 쓰는 평범한 물건이었지만 형사 M의 촉이 강하게 발동했다. 형사 M은 케이스를 건네받아 열어보았다. 엑스터시, 케타민, 합성대마 등. 가스레인지 케이스 안에는 각종 마약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그제야 A 씨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마약 공급책임을 인정했다. 형사 M은 목포 시내에 있는 베트남인들에게 마약을 공급한 혐의로 A 씨를 구속 송치했다.


2021년에서 2022년으로 해가 넘어갔지만, 형사 M의 마약 공급책 추적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전남 고흥과 광주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B 씨(남성, 20대 중반)이 타켓이었다. 수사팀은 B 씨에 대한 정보를 여러 방향으로 수집했다. B 씨는 전남 고흥에 본 주거지가 있었지만 청주시에 있는 친구 집에도 자주 드나드는 인물이었다. 형사 M은 청주 주소까지 꼼꼼하게 파악해뒀다.
목포에서 청주까지 걸리는 시간은 4시간. 형사 M은 차를 직접 몰고 출발했다. B 씨의 체포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B 씨의 얼굴은 알아둔 그의 SNS를 통해 미리 익혀둔 상태였다.

 

특히나 B 씨는 이마에 큰 점이 있어 누구나 쉽게 기억할 만한 얼굴이었다. 형사 M이 B 씨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룸건물을 찾았을 때 건물의 주인 역시 그의 얼굴을 기억하며 B 씨가 이곳에 자주 오고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형사 M과 수사팀은 이 원룸이 혹시 B 씨의 마약창고가 아닐까 싶어 방 안을 수색했지만 빈 방에서 의심스러운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직접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형사 M은 첫술에 배부를 리 없다는 생각으로 체포 의지를 꺾지 않았다. 원룸 건물의 주인은 B 씨가 나타나면 형사들에게 바로 알려주겠다며 수사에 협조를 약속했다. 그러던 2022년 10월의 어느 금요일 밤, 드디어 청주 원룸 건물주인의 연락이 왔다.

건물주인은 B 씨가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함께 원룸으로 들어갔다는 제보를 해왔다. 형사 M은 서둘러 청주로 향했다. 하지만 목포에서 출발한 수사팀이 청주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이미 B 씨와 친구들은 원룸을 떠났고 다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후로도 수사팀은 번번이 B 씨의 체포기회를 놓쳤다.

 

한번은 B 씨의 SNS를 서치하다가 B 씨가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형사 M이 청주 시내의 병원을 이 잡듯이 뒤져 마침내 한 곳의 병원에 B 씨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병원으로 출동하려는 찰나 환자의 이름을 착각했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고 허탈해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B 씨가 고흥의 낚시터에 출몰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수사팀은 아예 고흥에서 B 씨의 주거지를 찾아낼 계획으로 낚시터에서부터 CCTV를 따라가며 B 씨의 이동경로를 추적 할 생각이었다.

형사 M은 낚시 중인 B 씨의 모습을 CCTV 속에서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B 씨의 체포는 시간문제였다. CCTV 영상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가는데 예상치 못한 사각지대가 나타났고 결국 B 씨의 동선이 끊겨 버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B 씨 때문에 형사 M은 애가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그러던 2022년 12월 15일, 형사 M에게 아주 중요한 첩보 하나가 입수되었다. B 씨가 다음 날 새벽 목포에서 엑스터시 600정을 거래한다는 소식이었다.

 


2022년 12월 16일 새벽 5시 목포역 인근 남초등학교 앞. 형사 M과 수사팀은 4대의 차량에 나눠 탑승해 최대한 몸을 낮춰 숨죽이고 있었다.

학교 앞은 로터리를 낀 오거리였고, B 씨가 어느 방향으로 도주하더라도 추적이 가능했다. 마약 구매자인 베트남인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초초한 기색으로 B 씨를 기다렸다. 구매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B 씨를 기다리기를 몇 분, 어둠 속에서 차 한 대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운전자는 여성이었고 그 옆에 B 씨가 타고 있었다. 곧 차에서 내린 B 씨는 마약 구매자를 뒷좌석에 태웠고 B 씨는 다시 조수석에 올라탔다. 빨갛게 켜져 있던 브레이크 등이 꺼지고 그들이 탄 차량이 움직이려 하자 형사 M은 손짓으로 사인을 했다.

 

형사 M의 사인이 떨어지면 수사팀 차량 한 대가 B 씨의 차량 앞을 재빠르게 가로막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 수사팀의 차량은 움직이지 않았고 B 씨의 차가 출발하려 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형사 M은 이번에도 B 씨를 놓칠 수 없단 생각에 B 씨의 차 앞으로 달려나갔다. 위험함을 감지할 새도 없이 움직이는 차의 운전석 문을 열었다. 형사 M의 등장에 놀란 여성은 서둘러 문을 닫아 잠갔고 엑셀을 힘껏 밟았다. 형사 M은 차 문을 붙잡고 계속 이동하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질렀다. 자칫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형사 M은 이번에도 B 씨를 놓치느니 본인이 다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형사 M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수사팀의 차가 나타나 B 씨의 차를 가로막았다. 수사팀은 곧바로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성을 체포했다. 하지만 B 씨와 마약 구매자는 문을 열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형사 M의 목표는 B 씨였다. 마약 구매자는 다른 수사팀에 맡기고 형사 M과 팀원들은 B 씨의 뒤를 쫓았다. B 씨는 목포 구시가지 언덕의 골목 이곳저곳을 달리다가 결국 쫓아오는 형사 M에게 잡히고 말았다. B 씨가 거세게 반항을 해봤지만 더는 형사 M의 손을 벗어 날 수 없었다.


형사 M은 곧바로 B 씨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그 안에 12월 15일 밤에 B 씨가 판매책 에게 엑스터시를 구매한 이력이 적혀 있었다. B 씨 취조결과 판매책의 주소는 경기도 안양에 있었다. 형사 M과 팀원들은 곧바로 차를 몰아 안양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미 도주한 후였다. 수사팀은 인근 CCTV를 총동원했다. 영상 속에는 두 명의 베트남인이 거주지에서 나와 카카오택시에 올라타는 장면이 남아 있었다. 형사 M은 급파된 다른 수사팀에 연락해 해당 차량과 판매책들의 동선 추적을 지시했다. 차량의 실시간 이동 경로가 잡히기 시작했고, 안양에서 도망친 두 명의 판매책은 경기도 화성에서 긴급체포되었다.


오랜 시간 추적해온 마약 공급책 B 씨를 체포하고 판매책 두 명을 검거하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 긴 하루를 보낸 형사 M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모처럼 편안한 잠을 청했다. 흐뭇한 미소가 형사 M의 입가에 번져갔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