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9일 자 뉴스에 이런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네가 모셔라” 자식 다툼에 흉기 휘두른 90대 아버지.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90대의 노인이 자신의 부양 문제를 놓고 다투는 딸들을 보고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노인(당시 95세)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큰딸 집에 모인 자식들 중 큰딸과 막내딸이 자신을 부양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자 막내딸의 뺨을 때리고 허리춤에 숨겨 둔 흉기로 싸움을 말리는 막냇사위의 목과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다행히 막냇사위는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 살던 노인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부양 문제를 두고 딸들 간에 평소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특히 노인이 막내딸 집에 머무는 동안 딸이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해 막내딸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해코지를 당할까 봐 방어 차원에서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라고 경찰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은 현장에 있던 가족 중 한 명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용되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내가 27년여 동안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만난 최고령 수형자가 되었다. 내가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96세였다. 아마도 전국 교정기관에서 최고로 연세가 많으신 분이었을 것이다. 노인의 사건은 그가 구치소에 수용되었을 때 보호 관계만 확실하면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도 있던 사건이었다. 6명의 자녀를 둔 그가 결국 교도소의 문턱을 넘게 된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나는 직원들에게 96세의 수용자가 우리 기관에 오게 된 사연을 전하며 국립요양원에 근무하는 우리가 잘 모시자고 말했다. 국립요양원은 노인수용자들이 늘어가며 그들을 관리하게 된 교도소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직원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교도소가 정말 국립요양원의 역할을 하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수용자들과 달리 노인 수용자들은 아무래도 건강 문제 등으로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특히 96세의 최고령 수용자처럼 가족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한 경우엔 더욱 안타까움이 더하다. 노인 수용자일수록 연락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교도소 생활에 큰 활력을 주고 도움이 된다. 가족들과 관계가 좋은 노인수용자들을 바라보는 교도관들도 마음의 부담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4년여 전 내가 담당했던 노인 수용자는 치매에 걸린 수용자였다. 치매에 걸렸어도 아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참 각별했다. 부인과는 아들이 어렸을 때 헤어졌고, 노인 혼자 갖은 고생을 하며 키운 아들인지라 정이 깊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 수용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치료감호소를 갔다 온 전력도 있고 힘은 아직까지 장사인데다 기백도 넘쳐 젊은 친구들과 부딪히는 문제들이 많았다. 툭하면 다른 수용자들과 싸우고 다투니 독거실에 수용되기도 여러 번이었다. 교도관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본인을 돌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 수용자 자신은 별 문제 없어보였다.
하루는 독거실에 있는 노인이 뭘 하고 있나 슬며시 들여다보니 옛날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노래자락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근무를 서다가 잠시 짬이 나면 치매노인이 있는 거실 앞으로 가서 일부러 말을 걸었다. 내가 “영감님! 노래 한자락 해보세요”하면 노인은 수줍어하며 “노래는 무슨, 노래 잘 못 불러유~” 하면서도 “듣기 좋으니까 한번 불러줘요”라고 재촉하면 못이기는 척 구성진 노래자락을 뽑아 주었다. 앵콜을 요청하면 또 신이 나서 몇 곡을 더 부르기도 했다. 치매에 걸렸어도 순박한 마음은 잃지 않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몇 달 잘 있나 싶었는데 설날이 며칠 지난 어느 날, 불교행사에서 스님이 “설날 떡국 잘 드셨나”하고 물어보자 “떡국도 많이 주지 않으면서 뭘 잘 먹었냐고 물어봐유?”라고 큰 소리를 쳐댔다. 노인이 괜한 시비를 거는 통에 행사에 지장을 주었고 결국 노인은 조사방에 수용되었다.
나는 노인과의 대화에서 아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걸 알게 되었고 전화 통화도 하게 해주었다. 비록 교도소에 들어와 조사방을 오가는 신세지만 그도 아들 앞에서는 인자하고 의젓한 아버지였다. 내가 직접 노인의 아들과 통화한 적도 있었는데, 아들은 아버지를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나는 이 노인이 그래도 자식한테 버림받은 사람은 아니란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고령의 부모가 출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들도 많이 보았다. 자식들 입장에선 치매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의 부모를 돌보는 일이 경제적, 정신적 측면에서 부담이 클 것이다. 요양원에 모시려 해도 그 비용과 절차도 만만치 않은 것이라 오히려 교정 시설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이 자식들 입장에선 속이 편할 수 있다.
이곳에선 무료로 삼시 세끼를 제공하고 건강 문제가 생기면 병원으로 연계해주니 한시름 덜 수 있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마주하면서 교도소에 오기 전 국가가 초기부터 노인들을 위한 돌봄 시스템을 마련해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 역시 국가기관에서 일해본 바, 여러 측면에서 어려울 걸 알면서도 아직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노인 수용자들을 생각하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