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지정 사동은 교도소 안에서도 가장 험난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험지 중 험지’로 불리며 교도소 직원이라면 다들 고개를 흔들며 피하려 한다. 이해는 된다. 이곳엔 규율을 상습적으로 어기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단체생활이 어렵거나, 신체적으로 작업을 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통제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 수용자들 중 절반 이상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라 사람들이 더 예민한 상태다.
오늘도 나는 이 험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다들 미지정 사동을 꺼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이곳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바람에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만큼 인간에 대한 성찰과 이해를 깊이 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지정 사동에서 근무했던 시절은 아득히 멀어졌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이 있다.
“주임님, 제 얘기 좀 들어주십쇼…”
어느 날 아침, 한 노인 수용자가 나를 찾았다. 늘 그렇듯 바쁜 아침이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뭔가 무겁고 오래된 사연이 느껴졌다. 직업군인으로 퇴직한 노인은 매달 군인연금 300만 원이 꾸준히 나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교도소에 들어온 후부터 연금은 부인에게 넘어가고 있었고,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방 친구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어 부인에게 “매달 50만 원만 보내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커녕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제가 방법을 찾아볼게요”
내 대답에 노인의 얼굴에 살짝 희망이 스쳤다. 아예 방법이 없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노인에게 공무원연금공단 주소를 주며 교도소에서 발급받은 수용증명서를 동봉하고 연금을 본인 영치금 계좌로 직접 수령하겠다는 편지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던 노인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앞으로는 연금을 본인 영치금 계좌로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노인의 연금이 움직이니 소식이 없던 그의 가족들이 나타났다.
“딸이 외손주를 데리고 접견 왔습니다!” 접견이 끝난 노인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행복해하는 노인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괜한 노파심이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앞으로 딸이 연금을 다시 부인 앞으로 돌려달라 제안할 수도 있으니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절대 안 넘어갑니다!” 노인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연금은 다시 부인의 계좌로 들어가게 됐다. 황당해하는 나와는 달리 그의 얼굴을 평온하기만 했다. 노인이 말했다.
“돈보다도 딸과 화해하고 가족이랑 다시 연락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집에서 매달 30만 원씩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하니 우선 믿어보기로 했다. 또한 나는 노인의 행복한 얼굴에서 그가 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선택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나 역시 돈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고, 나 또한 가족과 화해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노인 수용자처럼 이 안에서 화해와 평화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치매를 앓고 있던 P 노인은 어찌나 힘이 넘치는지 젊은 수용자들과도 주먹다짐을 벌일 정도였다.
가족의 접견이 없어 늘 혼자였고 욕심은 또 어찌나 많은지 사사건건 다른 수용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하루는 내가 먼저 다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켜보니, 아들이 어렸을 때 가출한 부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평생 가슴에 남아 있고,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깊었다.
P 노인은 노래도 구성지게 잘 불렀는데 칭찬 몇 마디에 몇 곡이라도 계속 부르는 순진함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P 노인 때문에 사동 전체가 시끄러워지더니 결국 P 노인은 징벌 사동으로 옮겨졌다. 설날의 “떡국 소란” 때문이었다.
설날을 맞아 열린 불교 종교행사에서 스님이 수용자들에게 새해 인사차 물었다 “떡국 많이 드셨습니까?” 그러자 P 노인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많이 줘야 많이 먹지!” 그렇게 시작된 P 노인은 난동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기동순찰팀까지 나섰지만 억척같은 힘으로 소란을 피우는 P 노인을 제지하지 못했고 결국 P 노인은 조사 수용되고 말았다. 징벌로 넘어가 버린 이상 내가 도와줄 수도 없으니 그저 쓴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 밖에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장보살님에게 하루 종일 욕설을 퍼붓는 욕쟁이 수용자, 한때는 꽃동네 봉사자였지만 교도소에서 독거실만 고집하는 고집불통 K까지. 교도소, 그것도 미지정 사동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곳에도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누구는 미래를 위한 화해를 하고 누구는 과거에 갇혀 눈물을 흘린다.
이곳이라고 인간의 희로애락이 왜 없겠는가. 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교도관으로 그들 인생의 한 페이지를 묵묵히 지켜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