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 차가 다니는 길처럼 길의 유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그 삶 역시 하나의 길이다.
삶에 있어서 같은 길이라도 누군가에겐 오르막길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 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똑바른 길인 듯하다가도 구불구불 굽어진 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교도소 문을 통과하는 길도 그렇다. 같은 길이지만 입소할 때는 절망의 길이 되고 출소할 때는 희망의 길처럼 여겨진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교도소에 수용되는 길을 걷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길을 꿈꾼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수용자들의 인생 역정을 곁에서 들여다보는 교도관의 길을 걷다 보면, 교도관은 어쩌면 성직자와 같은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인내와 절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형자들 중에는 일반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차마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건도 생긴다.
특히나 가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백지상태인 수형자들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 곤란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교도관의 길이기에 수형자들의 사정에 인간적인 관심을 주고 개선의 가능성을 찾아보게 된다. 물론 초임 때는 수용자들의 사정에 세심한 관심을 주지 못했었다.
열대야가 이어지던 한여름, 잠을 안 자는 수용자들에게 빨리 자라고 다그쳤던 것은 아직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용 정원 6명인 거실에 8명씩 꽉 들어차 있고, 선풍기도 없는 좁은 곳에서 서로 붙어 칼잠을 자야 했던 그들의 고충을 몰랐던 것이다. 쉽게 잠들지 못해 깨어 앉아 있던 그들에게 규율만을 내세웠던 때였다.
날씨 탓인지 한여름엔 입실을 거부하고 독거실인 징벌실에 가려는 수용자들이 많이 발생한다. 저마다의 트라우마로 인해 여러 사람과 붙어 지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오래전 어머니와 여동생이 덤프트럭에 치여 끔찍하게 사망한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수용자도 있었고, 어릴 때 어머니가 자살하고 술에 취해 살던 아버지의 부패한 시신을 발견했다던 수용자도 트라우마로 인한 입실 거부를 했다.
독거실이 많으면 좋겠지만 한정되어 있다보니 독거실에 수용해야 할 사람들을 혼거실에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웬만한 입실 거부는 날씨 탓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두 사람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상당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교도소의 과밀 수용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도소의 구조적 한계도 있겠지만, 흔히 단골이라고 부르는 재범수용자들의 수도 상당한 수준이다. 나갔던 수용자들이 계속해서 돌아오고 있단 뜻이다. 승진을 하면서 타 교도소로 갔다가 3년 만에 복귀해 보니 출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교도소에 들어온 수용자들이 한숨이 나올 만큼 많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노인 수형자 P를 다시 마주쳤을 때는 서로 놀랄 지경이었다. P의 출소 시점과 나의 승진 시점이 맞물리면서 따로 얼굴 보고 인사를 못 하게 되자 P는 직접 내게 편지를 남기며 인사를 전했던 수용자였다. 내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출소했던 P가 어찌 된 일인지 다시 교도소에 들어와 있었다.
P는 출소 후 가족도 없고 주거지도 없어 여인숙 등을 전전하며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 수당으로 생활하다가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고 결국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됐다. 어쩌면 그는 사회에서의 생활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편했기 때문에 다시 이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병변 4급에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었지만 약도 제대로 사 먹지 못했을 것이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P뿐만 아니라 교도소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수용자들이 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생활능력이 없는 노숙자, 의지할 곳 없는 고령자들 중에는 노역 집행 포함 10범 이상 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다는 뜻이다.
나는 이것이 과연 이들만의 탓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을 무시하고 외면만 한다면 그들이 결국 범죄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생기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10범 이상의 노역수들,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불필요한 범죄가 늘어날 뿐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재범율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지지 않는 이상 현재로선 과밀 수용 문제도 해결할 길이 묘연하다.
교도소가 이들의 주거지가 되지 않도록 교도소는 물론 치료감호소, 법무보호복지공단이 서로 연계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조건부 재활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아무리 인간적이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교도관들이 있어도 이들을 구제하지 못하고 이들의 재범을 막아내지 못한다. 제대로 된 시스템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