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정 변호사의 다이어리

최후진술은 구체적 계획이 중요
단순한 “죄송합니다”로 부족해
곁에서 끝까지 싸워주는 변호사

법정은 고요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바라보았다.
“피고인은 최후 진술을 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던 의뢰인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주 전, 우리는 구치소 접견실에서 이 순간을 대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변호사님… 저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진심을 담아야 합니다. 법원에서 듣고 싶은 건 변명이 아니라 얼마나 이 사건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지입니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세요. 그리고 중요한 건, 법원이 피고인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사회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오랜 고민을 했고, 스스로 최후 진술을 정리했다. 나는 그의 변호인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의뢰인의 최후 진술이 시작되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번 사건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피해자께 너무나 죄송하며, 가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저는 피해자분께 사죄하며,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법이 저에게 내려주는 어떠한 결과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중략)”

의뢰인은 눈물을 흘리며 최후 진술을 마쳤다.

 

최후 진술은 단순한 반성의 표현이 아니라 피고인이 법정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다. 법원은 감정적 호소보다는 피고인이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있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중시한다. 단순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고, 이를 어떻게 회복하려 할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법원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재범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피고인이 출소 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다짐이 아니라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이야기해야 한다. 상담을 받겠다는 약속, 직업을 구할 계획, 가족들과의 관계 회복 등을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법에 대한 존중과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최후 진술은 판사에게 신뢰를 주는 과정인 것이다.

 

재판이 끝난 후,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의뢰인의 표정이 어느새 담담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고 기일이 다가오는 동안 나는 법원에 마지막 참고 서면을 제출했다. 의뢰인의 반성과 재범 방지 계획을 강조하면서 사건의 법적 쟁점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한 문장, 한 문장을 신중하게 작성했다. 의뢰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선고 기일, 의뢰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변호사님! 남편이 집행유예를 받았어요!”

 

의뢰인의 아내가 전해 준 소식에 나 역시 미소가 지어졌다. 법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의뢰인 중 그가 보여 준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눈에는 진정한 반성과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희망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나는 단순히 법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그 순간까지 곁에서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법정에서는 단 한 마디도, 단 한 줄의 변론도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사건에 임한다. 그 모든 것이 모여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