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탁법 개정 후… 판결문 20건 분석해보니

피해자 중심 판결 강화 경향
피해자 동의 없이 감경 어려워
공탁금 감경 인정 기준 제각각
판사에 따라 감경 여부 달라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는 극심한 굴욕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며, 향후 건전한 성적 가치관 형성과 인격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피고인들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피고인 C는 피해자를 위해 2,000만 원을 공탁하였으나,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2025년 2월 4일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므로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는다.”(대구지법 서부지원 2025. 2. 6. 선고 2024고합000)


올해 1월부터 ‘기습공탁’과 ‘먹튀공탁’을 방지하기 위해 공탁법이 개정되면서 형량 감경 요소로 공탁을 인정하는 기준이 더욱 엄격해지며 법원의 판결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


형사공탁제도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가해자에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일부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금을 걸고 이를 형량 감경 요소로 활용하는 이른바 ‘기습공탁’을 진행해 왔다.

 

또한, 판결 이후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은 틈을 타 이를 회수하는 ‘먹튀공탁’ 사례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공탁제도 개선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고, 올해 1월부터 개정 법안이 시행됐다. 개정된 주요 내용은 피고인이 공탁금을 낸 경우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공탁도 감형 사유로 작용했으나, 개정 이후 피해자의 의견이 재판 과정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감형 후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이 이를 회수하는 것을 제한했다. 다만,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하거나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 등 일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회수가 가능하다.


17일 더 시사법률이 형사공탁제도 개정 이후 2025년 2월 선고된 판결문 20건을 분석한 결과, 법원은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의사를 중요한 양형 요소로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피고인이 공탁금을 예치한 사실만으로 감경 요소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개정 이후에는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게 반영되고 있었다. 특히, 피해자가 공탁금을 거부한 경우 재판부별로 이를 반영하는 방식이 달랐다.


지난 6일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특수강간 및 공동감금 사건(2024고합000)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2,000만 원을 공탁했으나,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를 감경 요소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으므로 이를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청주지법 충주지원도 특수상해 사건(2024고단000)에서 피해자가 700만 원의 공탁금을 거부했다는 점을 양형 요소로 반영하며 감형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 사정을 양형 요소에 반영하여 선고한다”고 밝히며, 피고인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반면, 같은 날 선고된 창원지법 마산지원의 특수상해 사건(2024고단1045)에서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했음에도 공탁을 일부 감경 요소로 반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였으나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참작해 양형에 고려한다”며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처럼 공탁제도 개편 이후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를 양형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그러나 피해자가 공탁금을 거부할 경우, 일부 재판부는 공탁 자체를 감경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일부 재판부는 제한적으로나마 감경 요소로 반영하고 있어 적용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JK의 김수엽 대표변호사는 “과거에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더라도, 공탁 자체만으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 감경 요소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피해자의 의사가 더욱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정된 제도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관련 판례와 추가적인 가이드라인이 더 축적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재판부마다 피해자의 공탁금 수령 거부에 대한 판단이 다르게 적용되고 있어, 우리 법무법인도 재판부별 판례를 분석하고 사례를 정리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뒤, 재판부 배정 시 이를 참고해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