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성폭 미수라도 피해자 상해 시 강간등치상죄 성립" 판결 유지

대법원이 성범죄가 미수에 그쳤더라도 피해자가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었다면 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등치상)죄가 성립한다는 기존 판례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0일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 등은 2020년 3월 서울의 한 주점에서 C씨 일행과 술을 마시던 중 C씨의 동석자가 먼저 귀가하자 C씨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인근 편의점에서 구입한 숙취 해소 음료에 B씨가 미리 소지하고 있던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넣은 다음 C씨에게 이를 마시게 했다.

 

이들은 정신을 잃은 C씨를 주점에서 데리고 나와 한 호텔로 데려갔으나 C씨의 가족과 동석자가 C씨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동석자가 B씨에게도 계속 휴대전화로 피해자 상태를 확인하는 바람에 성폭행은 미수에 그쳤다.

 

C씨는 졸피뎀으로 인해 일시적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는 등 상해를 입었고, 검사는 A씨 등을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년, B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이들에게 각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을 명했다.

 

A씨의 변호인은 2심 재판 과정에서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치상 범행의 기본 범죄인 강간이 미수에 그쳤으므로, 강간등치상죄의 미수범을 인정해 감경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에 의하면 특수강간의 죄를 범한 자뿐만 아니라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며 A씨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을 인정하는 점과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한 점을 고려해 A씨에게 징역 5년, B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및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 제한도 명했다.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치상죄에서 기본 범죄가 미수에 그쳤으나 중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 미수범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이날 다수인 10명의 대법관은 현재의 판례가 타당하므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수강간치상죄를 정한 성폭력처벌법 제8조 제1항은 특수강간죄의 기수범뿐만 아니라 미수범도 범행 주체로 포함하고 있다"며 "특수강간미수죄를 범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의 객관적 구성 요건 요소를 모두 충족하므로, 별도로 미수범 성립 여부는 문제 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특수강간이 미수에 그친 경우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을 인정해 감면하게 된다면, 별도의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형법상 강간치상죄의 처단형과 하한이 동일해지고 상한은 오히려 더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며 "처벌의 불균형이 야기돼 형사사법의 정의에 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특수강간치상죄에 미수범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관철한다면, 특수강간상해죄에서 특수강간과 상해가 모두 미수에 그친 경우 미수범 규정을 이중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기이한 결론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특수강간의 죄를 범한 경우뿐만 아니라 특수강간의 실행에 착수했으나 미수에 그친 경우라 하더라도, 이로 인해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으면 특수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는 현재의 판례 법리는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같은 다수 의견에 대해 서경환·권영준 대법관은 "특수강간치상죄 미수범 성립을 부정해 온 기존 판례는 변경돼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서 대법관 등은 "성폭력처벌법 제15조의 문언에 따르면 특수강간치상죄는 미수범 적용 대상임이 분명하고, 달리 이를 배제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특수강간치상죄에도 미수범이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형사법 규정의 일반적 해석 원칙과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 이념에 충실한 해석"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은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결과적 가중범인 특수강간치상죄의 미수범 성립을 부정하는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