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보다 법정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변호사이지만 변호사인 나에게도 법정 분위기는 언제나 숨막히게 다가온다. 특히 형사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날씨였다. 실내외 온도차이로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연락을 받았다. 고향 친구와 친한 분이 아동 강제추행으로 수사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관을 포함해 누구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라는 말에 감기 기운도 잊고 바로 사안 파악을 시작했다.
사건은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 조사가 이미 끝난 상황이라 나는 재판부터 조력을 시작했고, 첫 번째 기일에 일을 저질렀다. “존경하는 판사님,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자 합니다.” 피해 아동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나는 피해자에게 증인 심문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비공개 국민참여재판으로 재판은 진행되었고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법정에서의 다툼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때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꽤 어려운 과정이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자료를 검토한 후였지만, 놓친 부분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어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자료를 검토했다. 그리고 드디어 국민참여재판의 시작, 배심원을 선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을 어떤 기준에 따라 선정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배심원을 선정하면 증거 조사를 시작한다. 상대 검사의 기세가 몹시 거셌지만, 나 역시 변호사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판사님, 이의있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피고인이 억울하게 처벌받게 되었다는 점도 잊지 않고 피력했다.
나는 의뢰인의 억울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수집했고, 이를 배심원들에게 강력하게 피력했다. 당시 재판에 얼마나 몰입했었던지, 꿈에서도 재판을 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였다.
드디어 최후 변론하는 시간이 왔다. 나도 떨리고 의뢰인은 더 떨리는 순간이다. 나는 패소한 뒤에 ‘결과가 어떻든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억울하게 처벌받게 된 의뢰인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최후 변론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배심원 판정을 기다리던 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단 1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날이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2시간 반 정도가 흘렀고, 판결 선고의 순간이 다가왔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있어도 유죄 추정의 원칙은 없습니다. 제발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결과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피고인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순간 안도의 한숨과 눈물이 동시에 나왔다. 누구나 골치 아파 한다는 국민참여재판을 치열하게 준비했던 시간들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억울하게 아동성범죄자가 될 뻔했다며 의뢰인이 울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의뢰인과 끌어안고 함께 한참을 울었다.
법정에서는 냉철한 변호사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의뢰인의 눈물 앞에선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누구든 억울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이 글을 본다면 희망을 놓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물론 명백하게 혐의가 인정된 경우라면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볼 수 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