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던 A는 어느 날 고객으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났다. 평범한 고객으로 다가온 그들은 차량 리스와 구입을 진행하며 A와 친분을 쌓았다. 그들의 젠틀한 태도와 현금으로 두둑한 지갑, 확장되어 가는 사무실 규모는 A에게 그들이 성공한 사업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B는 가장 호감형의 인물로 A에게 종종 상품권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하게 된다.
꽤 괜찮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B는 자신이 하는 상품권 거래는 합법적인 사업이며, 단지 통장을 빌려주는 것뿐이라며 A를 안심시켰다. 보이스 피싱을 의심하는 A에게 B는 단순한 편법일 뿐, 중국의 큰손들이 들어와 상품권을 대량으로 사는 거래라고 답했다.
그렇게 A는 B의 말만 믿고 상품권 거래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통장 관리와 수표인출 업무를 맡았다. B는 A에게 인출 할 수표의 권면액과 장수를 정확히 지시했고, A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A는 점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품권 거래를 의뢰하는 회사들의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거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A는 B가 대신해 상품권 거래를 해준다고 하여 실제로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쉽게 거래가 되고 너무 쉽게 수수료를 받았다. A는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겐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본인들이 책임지겠지’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일을 지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거래하던 은행 계좌가 이상 거래로 인해 정지되었다. 그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B는 A를 안심시키며 거래하던 돈이 사실은 해외 코인과 관련된 일이라고 둘러댔다.
A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에 눈이 멀어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A는 자신이 단순한 통장 관리자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평범한 자동차 딜러였던 그는 어느새 거대한 사기 조직의 불법 자금 세탁팀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A는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B의 달콤한 말에 속아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것이다.
2인 이상 공동으로 범행하는 것을 공동정범 흔히, 공범이라고 한다. 법학적으로는 “공동가공의 의사와 그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실행이라는 주관적·객관적 요건을 충족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즉, 주범의 범행이 무엇인지 알고 같이 한다는 의사를 말한다.
A와 같은 환전책은 많은 경우 사기의 방조범 또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죄 정도로 처벌하여 왔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경우 주범, 즉 사기죄 공동정범의 유죄를 선고받는다. 그 형량도 너무 무겁다. 3~4년 형이다.
A는 재판에서 사기 방조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1년 10개월의 실형만을 선고받았다.
공동정범의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하면 최근 보이는 수사 및 처벌 추세는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너무 많고 범죄가 더욱더 교묘해진다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서는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만일, 적어도 A가 직접 상품권을 거래하고, 상품권 실물을 사고, 팔았다면 아마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