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이나 살인미수 사건에서 피고인이 음주 상태 등을 이유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법원은 단순한 음주나 감정 격앙만으로 책임능력이 저하됐다고 보지 않는다는 판단을 이어가고 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 제10조는 정신적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행위를 통제할 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저하된 경우에만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정신감정 결과뿐 아니라 범행 동기와 경위, 범행 전후 행동, 진술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임능력 여부를 판단한다.
실제 판례에서도 단순한 음주 상태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확인된다. 2016년 부산고등법원은 술을 마신 뒤 흉기를 들고 피해자를 찾아간 사건에서 범행 전후 행동 등을 근거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완전히 상실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감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같은 법리는 최근 판결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A씨는 지난 2월 울산 자택에서 어머니에게 술상을 차려달라고 요구하다 말다툼이 벌어지자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조사 결과 A씨는 과거 모아둔 약 2억원을 어머니를 통해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뒤 온라인 도박에 빠졌고 이후 직장에서 해고된 뒤 집에서 음주를 반복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갈등이 지속됐고 폭력 행위가 이어지다가 결국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인 어머니는 사건 직후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곧바로 병원을 찾지 않았으나 복부 상처가 악화되면서 이틀 뒤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진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서 A씨 측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며 형의 감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복부에 중대한 상해를 입고 후유증까지 남은 점을 지적하며 범행의 위험성과 결과가 결코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단순히 술에 취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책임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법무법인 민 박세희 변호사는 “심신미약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음주 상태가 아니라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이나 행위 통제 능력이 실제로 현저히 저하됐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입증돼야 한다”며 “범행 전후 행동과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인정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