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여동생을 흉기로 위협하던 부친과 실랑이를 벌이다 살해한 30대 남성의 징역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 남성은 재판에서 “가족을 지키려 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A씨(33)의 형을 확정했다.
A씨는 2017년 10월 필리핀에서 부모,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던 중 평소 폭언을 일삼던 부친이 여동생을 폭행하고 모친을 향해 흉기를 들자 이를 제지하려다 범행에 이르렀다. 실랑이 과정에서 A씨는 부친이 휘두른 칼에 팔을 다친 뒤 분노해 프라이팬으로 부친의 머리를 내리치고, 빨랫줄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재판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칼로 찌르려는 아버지를 막기 위한 행위였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부친이 칼을 떨어뜨리고 방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추가 폭행이 이뤄졌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법원은 “A씨의 상처는 몸싸움 중 생긴 것으로 보일 뿐, 생명에 대한 즉각적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또 “부친이 주방에서 방으로 피한 이상 부당한 침해는 일단락됐고, 이후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빨랫줄로 목을 조른 것은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부친이 가정폭력을 일삼은 점, A씨가 공포와 격분 속에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을 고려하면 1심 형량은 다소 무겁다”며 징역 6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즉, 현재성, 부당성, 방위의 상당성이 모두 충족돼야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만약 방위행위가 다소 과도했다면 ‘과잉방위’로 형을 감경할 수 있고(제21조 제2항) 공포·당황·흥분 등으로 인한 과잉방위라면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제3항).
그러나 법원은 A씨 사건에서 부친이 칼을 놓친 뒤 방으로 피신한 시점에 ‘현재의 침해’가 끝났다고 판단했다. A씨의 폭행은 방어가 아닌 ‘보복 또는 공격’으로 본 것이다. 또한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내리친 뒤 의식을 잃은 부친의 목을 졸랐다는 점에서 행위의 정도가 ‘상당한 이유’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의 행위를 “이미 종료된 침해에 대한 사후적 공격행위”로 판단해 정당방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형사전문가들은 법원이 정당방위의 요건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예문정 정재민 변호사는 “가정폭력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느끼는 위협이 단순히 한순간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가해자가 무기를 내려놓았더라도 공포가 지속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