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상속세 회피 의심 거래, 계약 효력만 따져선 안 돼”

 

1000억원대 상속세를 둘러싸고 피상속인 사망 직전 이뤄진 주식 매각이 조세회피를 위한 ‘가장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단순히 주식 매매계약의 사법상 효력만으로 과세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되며 거래의 실질과 목적에 대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자산가 A씨 유족들이 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상속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A씨가 2015년 말 사망하기 약 한 달 전 말레이시아 소재 에너지 회사(J사) 주식을 조세피난처인 세이셸공화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주당 1달러, 약 3억4000만원에 매각한 거래에서 비롯됐다. A씨는 당시 약 1300억원 상당의 비상장법인(L사) 주식도 보유하고 있었다.

 

유족들은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에너지 회사 주식 매각대금과 비상장법인 주식 등을 포함해 상속재산 2000억원대, 산출세액 약 1000억원을 신고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세무조사 결과 해당 주식 매각이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가장매매에 해당한다고 보고 주식의 실질 가치를 약 280억원으로 평가해 상속재산에 포함시켰다. 감사원 지적까지 반영되면서 최종 상속세는 1100억원 안팎으로 늘어났다.

 

1·2심은 A씨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었고, 유족이 회사를 직접 지배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가장매매로 보기 어렵다며 과세 처분 일부를 취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하급심이 주식 매매계약의 사법상 효력 유무에만 초점을 맞춰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매매계약이 형식적으로 유효하더라도 그 거래가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한 비합리적 외관·형식에 불과하다면 실질과세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특히 ▲A씨가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굳이 주식 매매를 해야 했던 이유 ▲조세회피 목적 외 합리적인 거래 동기 존재 여부 ▲주식 가액이 주당 1달러로 산정된 경위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시점·자금 조달 구조 등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가장행위 여부에 관한 피고의 주장을 증명 부족을 이유로 배척하면서도, 실질과세 원칙과 석명권 행사, 조세소송의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비상장법인 주식과 관련된 채무가 상속재산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하급심 판단은 그대로 유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