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속 아내 숨지게 한 60대…검찰 ‘살인’ 아닌 촉탁살인 적용 왜

핵심 쟁점은 ‘피해자의 진지한 촉탁’

 

생활고 속에서 지병을 앓던 아내를 숨지게 한 60대 남성이 살인죄가 아닌 촉탁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단계에서 적용됐던 살인 혐의를 검찰이 촉탁살인으로 변경하면서 그 법적 기준과 판단 근거에 관심이 쏠린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주지검 형사2부(부부장검사 강화연)는 살인 혐의로 송치된 A씨(65)에 대해 보완 수사를 진행한 뒤 혐의를 촉탁살인으로 변경하고 지난 10일 구속 상태로 기소했다.

 

A씨는 지난달 9일 오후 6시쯤 충북 보은군 보은읍의 한 모텔에서 아내 B씨(61)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범행 다음 날 “아내가 숨진 것 같다”며 119에 신고했고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골수암 의심 진단을 받은 뒤 병을 비관하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자녀 없이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후 보완 수사를 통해 범행 경위와 피해자의 건강 상태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 부검 결과와 함께 피해자의 병원 진료 기록을 확인하고 의료진 등을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범행 직전 두 사람이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A씨의 혈액에서도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 동반자살 시도가 실패한 이후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촉탁살인으로 변경했다.

 

촉탁살인은 피해자의 부탁이나 승낙에 따라 살해가 이뤄진 경우 적용되는 범죄다.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경우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형법 제252조는 촉탁 또는 승낙에 의해 사람을 살해한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촉탁살인은 단순히 피해자가 “죽고 싶다”고 말했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법원은 촉탁이나 승낙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한 명시적이고 진지한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급심 판례에서도 이러한 기준은 엄격하게 적용된다.

 

2017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촉탁살인의 촉탁은 “피해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명시적이고 진지한 것”이어야 한다며 일시적 감정이나 격정 상태에서 나온 발언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해당 사건에서 피고인은 피해자가 평소 “죽여 달라”고 말했고 범행 당시에도 저항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진지한 촉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살인죄를 인정했다.

 

비슷한 취지의 판단은 다른 판례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피해자가 평소 “죽고 싶다”고 말해 왔다는 사정이 있었지만 이를 진지한 촉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요양등급 신청을 준비하는 등 생활을 이어가려는 정황이 있었고 유서나 신변 정리 등 실제 죽음을 준비한 흔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살인죄를 적용했다.

 

반면 피해자의 죽음 의사가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는 촉탁살인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2017년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는 동반자살을 여러 차례 시도하고 가족에게 유언성 통화를 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 의사가 명확하게 나타난 사건에서 촉탁살인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먼저 죽여 달라”는 요청을 반복적으로 했고 동반자살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촉탁살인 여부는 단순한 발언이나 저항 여부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의사 형성 과정과 주변 정황, 범행 전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된다. 특히 피해자가 사망해 직접 진술할 수 없는 사건에서는 의료 기록이나 주변 진술, 동반자살 시도 여부 등 객관적 정황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살인에서 촉탁살인으로 죄명을 변경하는 경우도 이러한 법리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검사가 촉탁이나 승낙이 있었다는 점을 정황 증거로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형법 제252조를 적용할 수 있다”며 “이는 처벌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라기보다 사건 사실관계가 해당 구성요건에 더 부합한다고 판단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