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변의 변호사 일기] 무엇이 “진심”인가 당신의 “진심”은 무엇인가

법정에서 사라진 ‘진심’의 의미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고의’다

 

사실 법, 특히 형법에서는 ‘진심’이 중요하지 않 다. 하지만 ‘고의’는 중요하다. 두 개념은 어떻게 다를까?

변호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의뢰인들이 “왜 재판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 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느냐 는 것이다. 사기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하는 핵 심은 “기망 행위를 했는가”이다. 많은 의뢰인 들은 “피해를 줄 의도는 없었다”, “나도 사업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의뢰인들의 진심을 믿는다. 하지만 법원 은 ‘진심’이 아닌 ‘고의’를 본다. 중요한 것은 그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행동했느냐이 다. 그런데 고의란 무엇일까. 상대방에게 한 말 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고, 계획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은 내심으로 이를 인식하 고 용인했다면 사기죄 의 유죄를 선고한다.

 

변호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면, 사 업을 하는 사람 중 실패를 목표로 시작하는 사 람은 없다. 투자자들, 즉 나중에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도 100% 성공을 확신하고 돈을 맡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정말 투 자자들에게 100% 성공할 것이라 믿게 했던 것 일까? 이 지점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법 정 어딘가에서 숨어버린 걸까. 재판을 하다 보 면 진심과 고의에 대한 판단이 유무죄가 아니라 형량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변호했던 사 건이 떠오른다. 고소인 한 명에게 18억 원, 다른 한 명에게 3억 원을 받은 사건이었다. 총 피해액 은 20억 원에 달했다. 돈을 빌리거나 투자받은 이유는 각기 달랐다. 지역주택사업, 금광 채굴 사업, 부동산 개발사업 등 표면적으로는 흔히 사기 사건에서 등장하는 단어들이었다.

 

재판은 치열했다. 우리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피고인들이 실제로 사업을 추진했으며, 그들도 성공을 믿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피고 인들이 직접 투자한 금액, 실제 수행한 업무 내 역,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 그리고 사업이 실패한 이유에 대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법정에 제출했다.

변호사로서 오랜 경험을 통해 진심보다는 증 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 뢰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법정에서 “진심을 말해달라”고 요청 했다.

 

“처음부터 속일 생각은 없었고, 고소인들에 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구속영장 은 기각되었다. 나는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의 진 심을 보였다. 그가 가진 얼마 되지 않은 모든 재 산을 담보로 제공했고, 현재 손에 쥔 전 재산을 모아 극히 일부라도 피해자에게 변제했다. 그 진심이 통했을까? 혹은 단순한 법적 판단이었 을까? 어찌 되었든 구속은 피했다.

 

지역주택조합의 업무대행 계약이 해제되면 서, 검찰은 소급적으로 업무대행 권한과 용역 대금을 받을 자격이 사라졌다는 논리를 폈다. 오래전 일이라 자료가 많이 소실되어 오래된 서 류 박스까지 뒤졌다. 의뢰인들 역시 최선의 노 력을 다했다. 그렇게 업무대행을 위해 발주한 내역, 직접 지출한 비용 자료, 모델하우스 설치 및 운영 기록, 시공사· 금융사와의 협약 문서 등을 제출했다.

 

고소인에 대한 일부 변제 사실과 추후 완 제 여부에 대한 의사 역시 의심받았다. 그 러나 고소인을 찾아가 여러 차례 설명하며 진심 으로 설득했다. 결과는 집행유예였다. 재판부는 고의성과 진정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항소심 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20억 원이 넘는 피해를 초래한 사기 사건에서 완전한 변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 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은 나름 긍정적인 결 과였다.

 

결국 의뢰인도 이를 받아들이고, 재기 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 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재판부의 판 단을 마음속으로 의심한다. 그들이 정말 피해 자에게 손해를 입히려 했을까? 고의가 있었을 까? 본인도 실패를 예상했을까? 이것은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생각이다. 하지만 변호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 으로서, 수업시간에 배운 “의심스러울 때는 피 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에서도 나는 “진 심”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