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된 사람에게 변호인은 특히 더 중요하지만 일단 구금이 되어버리면 변호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든든한 가족이 있으면 예외이다. 가족이 나서서 어떤 변호사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수임료도 내주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이가 안 좋거나 경제력이 없을 때도 많다.
언젠가 지방에 있는 어느 구치소에 접견을 갔던 일이 떠오른다. 중년의 남자 피고인이 나를 선임하고 싶다면서 수임료는 자신이 쓴 메모지를 처에게 보여주면 바로 줄 것이라며 처의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바로 다음 주에 다시 접견하기로 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처에게 전화를 해보았는데 처는 냉랭한 목소리로 남편 휴대폰에서 내연녀와 통화 녹음 파일을 잔뜩 발견했다면서 오히려 가정법원 판사로도 일했던 나에게 이혼 소송 및 상간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법적 자문을 구했다.
그 처는 나에게 구치소에 가서 남편에게 합의 이혼을 하도록 설득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나는 수임료를 받지도 못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다음 주에 올 나만 기다리고 있는 피고인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지방 구치소까지 가서 접견을 하며 내가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사실과 아내와 나누었던 말을 전했다.
충격으로 망연자실한 피고인을 보면서 접견 때 변호사가 이혼 통보를 대신 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수용자가 구치소 안에서 변호사에게 접견을 와달라고 편지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도소에 들어가는 신문 광고를 보거나 바깥의 지인으로부터 변호사들의 이름과 주소를 받아서 쓰는 것이다. 나도 간간히 편지를 받는다.
모두 손편지다. 변호사가 되면 손편지를 이렇게 자주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편지를 잘 쓰는 분들도 많다. 글씨도 잘 쓰고 내용도 좋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데, 변호사가 어떤 부분을 도와주기를 기대하고, 지인의 연락처를 주면서 접견비를 이 사람을 통해 먼저 받으라는 정보가 명시되어 있다.
답장에도 시간과 수고와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송구하지만 모든 편지에 답하기는 어렵다. 그냥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쓰고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편지도 그렇다. 재심을 하고 싶다는 편지도 꽤 오는데 재심은 기존 증인이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하다.
일단 무조건 접견부터 와서 이야기부터 하자는 편지도 자주 오지만, 변호사가 구치소까지 출장을 가서 접견을 하면 최소한 반나절이 소요되어서 일반 상담보다 비용이 더 들고 사건 수임도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손실이 있으므로 사전에 지인을 통해 비용을 받지 못하면 접견을 가기 어려운 점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엊그제 구치소에 가서 접견을 했는데, 좋은 대화를 해서 종일 기분이 좋았다. 1심을 변호했던 20대 피고인인데 항소심 수임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1심 판결 선고 기일 때 판사가 변호인의 변론에 일리가 있어서 형량을 일부 감형했다는 말을 한 것을 들은 피고인의 모친은 더더욱 나를 항소심에서도 선임하고 싶어 했지만, 아들인 피고인이 어려운 어머니 경제 사정 때문에 자신이 혼자서 항소심을 대응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로서도 굳이 그를 접견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1심을 같이 했고 나름 정도 들었던 만큼 작별 인사를 간 것이었다.
고작 30분 정도의 짧은 접견인데 왜 기분이 좋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이십 대의 그 친구는 얼굴이 확연히 좋아져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얼굴이 어둡고 어깨가 꾸부정하게 굽었는데, 이날은 아이돌처럼 빛나고 말을 할 때 나와 눈도 또렷이 맞추면서 입가에 미소도 흘렀다. 길어진 머리칼이 스타일리시했는데, 자기가 스스로 면도기로 잘랐다고 했다. 멋있다고 하자,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났다. 정신적 힘이 더 생겼구나, 이곳에 더 적응했구나 싶었다.
1심 재판을 받은 소감이 어떤지 물으니, 구형량의 절반보다 형량이 적게 나왔다며 만족한다고 했다. 내가 열심히 변론해 주었고 풍부하고 정교한 서면을 써주어서 안 그래도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접견을 와주어서 감사하다고했다.
우리는 엄숙하게 진행되었던 재판 중에 각자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솔직한 뒷이야기도 나누었다.
재판장의 말투나 진행 방식에 대한 인상평도 하고,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증인은 위증을 했다면서 흉도 같이 보면서 같이 몇 번 웃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와 자주 소통한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그는 모친의 건강을 걱정했다.
나는 항소를 하게 되면 이런 점을 주장해 보라고 조언하고 미리 준비해 간 요지를 주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는 불쑥, 자신의 개인사를 말했다.
그 전에 사업을 크게 해보려다 코로나 때문에 큰 빚을 졌다, 그 빚을 급히 만회하려다 이렇게 되었다고. 그리고 다른 공동피고인의 가족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갇혀서 해명할 기회가 없이 오해만 받고 있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싶었다.
나는 부디 항소심에서는 더 좋은 판결을 받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마쳤다. 그는 접견실을 나가면서 몸을 비켜서서 어색하게 인사하고 씩 웃었다.
감사와 칭찬과 신뢰의 표현이 오가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오해받는 부분을 털어내고, 개인사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함께 누구를 흉보며 몇 차례 웃었으니 어찌 좋은 대화를 했다고 기억되지 않겠는가. 30분 정도의 시간 짧은 시간 동안 이 모든 감정이 오간 것도 놀랍다.
그 친구의 심성이 기본적으로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구치소에서도 좋은 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란 것을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좋은 대화, 좋은 접견일 수밖에. 그래도 앞으로는 구치소보단 더 좋은 곳에서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시사법률 손건우 기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