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의 출소 소식이 전해지면서, ‘화학적 거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이 조치는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억제하는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여해 성 충동을 낮추는 방식으로, 주로 아동 대상 강력 성범죄자에게 적용된다.
2007년 혜진·예슬 양 사건과 2008년 조두순 사건 등을 계기로 도입 여론이 높아졌고, 2010년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화학적 거세를 도입하는 내용의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화학적 거세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제정안엔 이 ‘동의’ 요건을 없앴다. 검찰이 화학적 거세를 청구하고 법원이 검찰의 청구가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판결로 화학적 거세를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집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화학적 거세’란 용어가 거부감과 수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성 충동 약물치료’로 변경됐다.
제정안에선 치료 대상자가 ‘16세 미만’ 아동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인 사람으로 확대됐다. 아울러 ‘상습성’ 요건이 삭제돼 초범이라도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후 2012년 법 개정 때 16세 미만이라는 성범죄 피해자의 연령 요건이 삭제돼 피해자 연령에 상관 없이 법에서 열거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인이라면 약물치료 대상이 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7월 제도 시행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에 대한 판·결정이 117건 내려졌다. 이 중 31건은 법원 판결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86건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성 충동 약물치료법에 따르면 ▲ 검사의 청구에 따른 법원의 판결 ▲ 성범죄 수형자의 동의를 바탕으로 한 법원의 결정 ▲ 치료감호 중인 성범죄자에 대한 치료감호심의위의 결정에 의해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 건수의 연평균을 구하면 한해 8건꼴이었다. 제도 도입 당시 연간 100건 정도로 전망됐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관계 당국이 그만큼 성 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결정하는 데 신중했음을 보여준다.
법무부의 법무 연감에 따르면 2011년 7월∼2023년 12월 검사의 치료 명령 청구 건수가 72건에 불과하다. 한해에 6건꼴이다. 법원은 이 중 39건을 기각했다. 기각률이 54%다.
화학적 거세가 실제로 집행된 건수는 지난달 말까지 모두 97건이었고, 이 중 65건이 종료됐다. 화학적 거세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장 15년에 걸쳐 집행된다.
최초로 성 충동 치료 명령을 받고 집행된 이는 형을 살고 나와 보호감호를 받던 아동 성폭력범 박 모 씨였다. 치료감호심의위가 2012년 5월 성 충동 치료 명령을 결정해 처음으로 시행됐다. 박 씨는 당시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전과가 4회인 성폭력범으로, 정신감정 결과 소아 성기호증으로 진단됐다.
성 충동 약물치료법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로서 해당 범죄를 다시 저지를 위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검사가 약물치료를 청구할 수 있게 돼 있다
성도착증 환자로 판명되고, 재범의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인정돼야만 한다는 의미다.
재범 위험성은KSORAS(한국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척도)를 사용하며, 대법원은 2014년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법적 평온을 해칠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직업, 전력, 동기, 치료 가능성 등을 종합 판단해야 한다.
치료는 출소 전 국립법무병원에서 시작되며, 이후엔 법무부 지정 의료기관에서 계속된다. 약물은 MPA, 류프롤리드, 고세렐린, 트립토렐린, CPA 등으로 1~3개월 간격으로 투여된다. 호르몬 수치와 소변검사로 상쇄 약물 복용 여부도 확인한다. 위반 시 최대 7년 징역 또는 2천만 원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비용은 국가 부담이다.
헌재는 2015년 제도 자체는 합헌, 다만 이의 제기 절차 미비는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2017년 법 개정을 통해 징역 종료 12~9개월 전 치료 면제 신청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여전히 ‘동의 없는 강제 치료’와 피해자 연령 제한이 없음에 대한 인권 논란은 계속된다. 유럽 10개국 중 8개국은 당사자 동의 하에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며, 우리나라는 몇 안 되는 강제 시행 국가 중 하나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 강제 화학적 거세를 도입하고 있지만, 대부분 아동 대상 성범죄에 한정된다. 전문가들은 성인 대상 성범죄자에게도 강제로 치료를 시행하는 우리나라 제도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약물치료 후 성적 충동, 자위, 음란물 시청 등이 감소했으며, 보호관찰관 95% 이상이 긍정 평가를 내렸다. 일부는 여성에 대한 관심 상실과 발기불능을 보고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평균 0.27ng/㎖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정상 수치 3~9ng/㎖).
64명의 치료 대상자 중 재범자는 1명, 약물치료 미대상군과 비교해 재범 위험은 92%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2023년까지 법무부 집계에서도 약물치료자 81명 중 재범자는 1명뿐이었다.
부작용도 존재했다. 설문 대상자 중 3명만 부작용이 없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열성 홍조, 체중 증가, 식은땀 등을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