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친족 성범죄 사실을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공소시효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제기됐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접수된 친족관계 성범죄 사건은 총 1,992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484건, 2022년 489건, 2023년 423건, 2024년 404건이었으며, 올해는 7월까지 192건이 접수됐다.
이 중 형사재판에 넘겨진 비율은 해마다 200건 이상이었다. 2021년 275건(기소율 51.6%), 2022년 237건(48.8%), 2023년 222건(54.3%), 2024년 240건(55.6%), 2025년 1~7월 111건(54.4%)이었다. 불기소 처분은 해마다 20% 이하에 그쳤다.
박 의원은 “기소율이 50%를 넘는다는 것은 드러난 사건보다 숨어 있는 범죄가 훨씬 많다는 방증”이라며, “피해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고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만큼,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폐지하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폐쇄된 가정 내에서 장기간 은폐된 친족 성범죄는 법원에서도 중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원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박정호)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등간음)과 성폭력처벌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약 1년간 전처 사이에서 낳은 두 딸 B양(당시 14세)과 D양(당시 16세)을 상대로 위계·위력을 이용해 간음 및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A씨는 B양이 “그만해 달라”고 울부짖었음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고, “이 사실을 말하면 가족이 다 떠난다”고 협박하며 공포심을 조성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보호와 양육 책임이 있음에도 피해자들을 자신의 성적 욕구 해소 대상으로 삼았다”며 “반인륜적 범행에 대해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처벌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해 공소시효에 특례를 두고 있다.
일반 범죄는 범행이 끝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지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 이는 미성년 시기의 신고 장벽과 종속 관계, 심리적 압박 등을 고려한 제도다.
특히 13세 미만 아동이나 신체·정신 장애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간·강제추행 범죄는 아예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례는 2012년 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다만 13세 이상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부터 7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DNA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된다. 예컨대 범죄 당시 공소시효가 15년이라면, DNA 증거가 있을 경우 그 시효는 25년까지 늘어난다.
이에 따라 13세 이상 미성년자 피해자들이 공소시효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박 의원은 “지금도 피해자가 성인이 된 뒤 수년이 지나서야 용기를 내는 경우가 많다”며 “공소시효를 이유로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일이 없도록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