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를 씻으며 한 생각 (부산구치소)

 

아침이 밝았다. 좁은 화장실에서 어제 하루를 깨끗하게 씻어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반찬으로 오징어젓갈, 총각무김치가 나왔는데, 참 맛있었다. 10월은 건강식으로 준비해 주셨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곁들여 먹을 상추도 들어왔는데, 상추를 씻는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조건에 따라 상대적으로 행동을 다르게 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되뇌는 중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웃는 사람에겐 미소로 답하는 법이지만, 어떤 일이든 시비를 걸며 표독한 성질을 보이는 사람에겐 냉정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깨닫는 진실일 것이다.


여기 있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원망스러운 시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이곳을 미움의 장소로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곳의 사람들은 따뜻한 미소의 주인공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반갑습니다” 인사를 드리면 무언의 미소로 나를 위로해 주시는 교도관님을 보며 하루를 용기 있게 버티는 날도 있다.

 

격무에 시달리며 야간 순찰을 하면서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시는 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밤이 깊도록 책을 읽는 내게 이만 자야 한다고 다정하게 말씀을 건네주시는 분들을 보면 이곳이 최고로 안전한 장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원망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쏟지 말자. 감옥에 있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많은 것을 느끼며 어떤 일도 감사함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나간다면 이 시간도 멋진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끔 생각의 장을 열어 준 상추 다발에 감사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숙해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 힘을 나답게 표현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