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끝까지 말한 사람, 그 옆에 선 이들을 믿습니다”...박준영 변호사를 만나다

억울한 피해자 먼저 알아봐 준 교도관, 그들의 온기로 견디던 피해자
재심 사건에서 만난 얼굴엔 사회의 가장 추운 자리의 고통 비쳐
‘페스카마호 사건’ 전재천 씨와의 재심 약속 지켜 ‘고통 견디는 삶’ 배우고 싶다

 

Q. <더시사법률> 독자분들 사이에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변호사 1순위’로 늘 이름이 오릅니다. 먼저 스스로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신다면, 어떤 변호사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재심 사건을 주로 맡아온 변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남 완도군 노화도에서 태어나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목포대학교에 진학했다가 군 복무 후 복학하지 않아 중퇴했습니다. 서울 신림동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 2002년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지금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박 변호사님 이야기를 하면 ‘등대장학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처음 장학회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첫 재심 사건이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이에요. 무죄 판결을 받고 보상금이 나왔을 때 아이들에게 “이 돈의 10%를 좋은 곳에 쓰자”고 했죠. 그리고 청소년 단체, 미혼모 시설, 세월호 피해자 단체 등에 후원을 했습니다.

 

그 이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 연이어 무죄가 나왔는데 그분들이 저에게 “10%를 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돈을 다시 유가족이나 피해자 지원에 쓰고, 진범을 잡은 형사분께도 일부를 나누고, 남은 돈을 모아뒀습니다. 그렇게 모인 금액이 1억원이 넘었어요. ‘이 돈으로 좋은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사법 피해자를 돕는 단체를 만들까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밀려드는 억울함을 감당할 인력과 재원을 갖추기 어렵다고 봤어요. 반면 아이들을 돕는 일은 학교 선생님, 교육복지사, 여러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마침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분들이 “좋은 일에 써달라”고 하셔서 그분들이 받은 보상금까지 합쳐 약 5억 9000만원으로 장학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이제는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분을 담당했던 천동성 교도관님을 비롯해 같이 최군을 돌봤던 여러 교도관님들이 “박 변호사님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전했습니다. 

 

천동성 교도관님 그리고 여러 교도관님들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20년 넘게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선생님은 진범 이춘재의 등장으로 30년 만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살인범’이라는 낙인과 가족조차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가 긴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억울함을 알아주고 믿어준 교도관님들의 온기 덕분이었습니다.

 

교도관님들은 돌아가며 영치금을 보태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줬죠. 특히 청주교도소의 박종덕 교도관님은 윤 선생님과 수형자·교도관으로서 17년, 출소 후에는 인생의 선후배로 지금까지 15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출소 뒤 머물 곳과 일터를 알아봐준 것도 박 교도관님이었어요. ‘약촌오거리 사건’의 최 군을 알아봐 준 천동성 교도관님과 여러 교도관님들 역시 그늘진 곳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일 것이라고 봅니다.

 

 

Q. 지난 28일 무죄 판결을 받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9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세 차례 방송된 바 있습니다. 2015년에는 한 작가분이 다른 매체를 통해 20부작 기사로 연재하면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2017년에는 직접 재심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당시엔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이 나간 사건이라 ‘새로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고, 기록을 깊이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초, 평소 친분이 있던 작가님이 “이건 정말 억울한 사건 같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 말을 계기로 다시 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순천지청에 찾아가 창고에 보관 중이던 기록을 확인해보니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빠져 있더군요. 심지어 수사 영상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잠깐만 봐도 “이건 수사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서도 두 차례 다뤄졌고요.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월 2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청산가리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의 허위 자백’이었습니다. 이분들 역시 지적장애인 못지않게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데, 정작 법적 보호는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심 과정에서도 저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저는 재심이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절차가 아니라 현재 제도의 허점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산가리 사건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Q. 재심 사건을 맡으실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십니까?

 

제가 사건을 맡을 때 중요하게 보는 건 억울함을 주장해온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싸워준 사람이 있는지입니다. 억울함을 주장한 기간이 길고 선한 연대가 함께 한 경우에는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접근합니다. 과학적 증거에 대한 맹신과 안일한 판단으로 진실을 놓칠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발생한 ‘진도 저수지 추락 사건’입니다. 내년 2월에 재심 선고가 예정된 사건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다가 차가 저수지에 빠졌는데, 아내는 사망하고 남편만 살아나왔습니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지만, 법원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죠.

 

그분은 수감 중에 저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셨고, 밖에서도 그분을 도우며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던 분이 메일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판결문을 보고 ‘이건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과수의 법의학, 자동차공학, 약리학 감정 등 유죄의 근거가 너무 탄탄했거든요. 그래서 “이건 거짓일 수 없다”고 단정했죠.

 

그리고 어느 날 한 방송사 기자분이 같은 편지를 받고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당시엔 “이건 이미 다 끝난 사건”이라며 만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 중 신뢰하던 분이 “이 사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때 다시 기록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제 판단이 틀렸다는 걸요.

 

Q.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나 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에 따른 재심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재심은 사실상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현행 재심제도의 구조적 문제나 한계에 대해 변호사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여러 재심 사건을 진행하며 경험한 재심 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솔직히 생각이 좀 복잡합니다. 알아갈수록 궁금증이 더 늘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했던 문제도 요즘은 한 걸음 물러서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요즘 주목하는 문제 세 가지 정도를 간략히 말씀드리는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사건별로 수사·재판의 문제 못지않게 변호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저 역시 지식과 경험의 부족, 때로는 불성실로 인해 변호를 잘못한 사건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해야 할 주장과 증거의 수집·제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심리가 부실해지고, 결국 오판으로 이어진 사례들의 경우, 이런 변호인의 결함을 재심 사유로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는 현재 제도상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변호사들이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수사에서의 통·번역 문제도 재심 사유로 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 달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기일이 열리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무기수 아크말 사건’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고 합니다. 아크말의 재심이 외국인 수사·재판을 보다 인권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사건은 통·번역 외에도 여러 절차적·실체적 결함이 뚜렷해 재심과 무죄가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타국에서 찾아오는 이도 없는 외로움 속에서 저를 믿고 견디는 아크말에게 깊은 신뢰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공범의 허위진술이 죄의 성부나 양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사건이 적지 않습니다. 위증을 인정받는 게 필요하지만 확정판결 이후 그 증언의 허위를 밝히는 일은 판결을 뒤집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 중 무기형으로 감형되어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재천 선생님의 재심을 하루빨리 추진하고 싶습니다만 아직은 마음이 앞섭니다.

 

교정시설 독자 비율이 높다고 알려진 <더시사법률>과의 인터뷰는 전재천 선생님께 제 진심을 전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힘내세요!”

 

Q. ‘페스카마호 사건’의 전재천씨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합니다. 현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네, 면회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꼭 이 사건은 제가 돕고 싶습니다. 증삼살인(曾參殺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증삼)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살인을 하였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증자의 사람됨을 알기에 처음에는 그 말을 무시했는데, 조금 있다고 또 한 사람이 뛰어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니 어머니도 놀라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공범으로 유죄가 확정된 선원들도 여전히 수감 중이에요. 그분들이 용기 내어 진실을 말씀해 주신다면 사건을 바로잡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함께 논의할 계획입니다.

 

Q. 전재천씨는 어떤 분이길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시는지요?

 

이분은 교도소 안에서도 매우 품격 있게 생활하세요. 교도관들에게도 신뢰받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복역 중이지만 단 한 번도 저를 재촉한 적이 없어요. 늘 절제된 언어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죠. 재심을 도우면서 ‘이분의 고통을 견디는 삶’을 배우고 싶습니다.

 

 

Q. “재판부가 증거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합의가 누락됐다” 등 재심이 가능한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김신혜 씨 사건처럼 25년 전 수사기관이 한쪽 증거만 수집하고,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 내역 같은 결정적 자료를 배제한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런 것들이 재심 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판결문에 특정 증거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재판부가 그 증거를 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합의 누락은 비공개 절차라 입증이 어렵고, 합의 없이 선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주장만으로는 재심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재심은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열거된 7가지 사유 가운데 하나에 해당해야 합니다. 단순한 심리 미진이나 절차상의 아쉬움은 그 요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사기관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고의로 숨기거나 제출하지 않은 경우, 그 증거가 ‘무죄를 입증할 명백하고 새로운 증거’로 평가된다면 재심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또한 검사가 직권을 남용해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방해한 것으로 법리 구성을 해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제7호) 성립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김신혜 씨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 내역 조사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25년이 지난 지금 이를 단정하긴 어렵기 때문에 재심 사유로 직접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당시 수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재판부가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Q. 교도관분들과는 자주 연락하시죠? 박 변호사님께 교도관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제가 맡았던 사건 중에는 교도관의 제보로 시작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대구 장미비디오 살인사건’이 그랬죠. 한 교화위원님이 오랫동안 수감자를 지켜보시며 “이 사람은 정말 억울해 보인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 제보가 교도관을 통해 저에게 전달됐고, 사건을 맡게 됐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러시아 여성 사건’도 있습니다. 당시 교도관이 “이분은 정말 억울한 것 같다”고 하셔서 변호를 맡았어요. 결국 그분은 가석방으로 러시아로 돌아가셨는데 출국 전까지 “제 사건을 꼭 밝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의 재심을 준비 중입니다.

 

저는 교도관을 통해 들어온 제보는 특히 더 유심히 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24시간 수감자와 함께 지내며 말과 행동, 태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분들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분들이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면 정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앞으로 변호사님의 목표나 계획, 그리고 분명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사법 피해를 호소하며 재심 등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여러 경로로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이유로 대부분 거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긴 분들에게 전혀 쓸모없고 형식적인 변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 도움을 오래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신 분, 끝내 세상을 떠나신 분도 계십니다. 현재 10건이 넘는 재심 사건을 진행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연을 맺지 못하는 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그 인생에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마주하고 고치려 한 노력이 얼마나 스며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심 사건에서 만난 얼굴들에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 가장 추운 자리의 고통이 비쳤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그 아픔과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