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천이 거래가 된 나라…6·3 지방선거 앞에 터진 뇌물 공천 게이트

김경·강선우·김병기까지, 세 의원이 드러낸 공천 시장의 구조적 부패
법원은 실형 선고하는데 비리는 왜 반복되나…20년 묵은 공천 범죄 연대기

 

서울시의원이 공천을 받으려고 국회의원에게 1억 원을 건넸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녹취 파일엔 더 많은 이름이 등장했고 자금 흐름은 보좌관과 지인 계좌를 거쳐 구·시의원으로 흘러 들어갔다.

 

경찰이 확보한 '황금 PC' 속 120여 개의 녹취 파일은 단순한 개인 비리의 증거가 아니라 한국 지방 정치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공천 거래 구조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김 전 시의원을 네 차례 소환 조사하며 공천헌금, 차명·쪼개기 후원, 추가 로비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서울시의회로부터 임의제출받은 PC에서 통화 녹취 120여개를 확보했고, 이른바 ‘황금PC’로 불리는 해당 자료를 분석 중이다.

 

이번 수사의 출발점은 2022년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오간 1억원이다. 김 전 시의원과 강 의원, 강 의원의 전 사무국장 남모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2022년 1월 김 전 시의원이 강 의원 측에 1억원을 전달했고 이후 반환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위는 엇갈린다. 김 전 시의원은 “남씨가 1억원을 달라고 먼저 요구했다”며 서울 용산구 한 호텔 카페에서 쇼핑백을 건넸고 강 의원이 “‘뭘 이런 걸 다’라고 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강 의원은 쇼핑백을 받았지만 현금이 든 사실은 뒤늦게 알았고 반환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술이 충돌하면서 경찰은 3자 대질조사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모든 방법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현역 의원으로 불체포특권이 적용돼 구속영장 청구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의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김 전 시의원이 2022년 10월 17명 명의로 총 8200만원을, 2023년 12월 11명 명의로 5000만원을 강 의원 후원계좌에 보낸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다. 강 의원 측은 후원자들이 김 전 시의원 추천으로 입금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반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자금법은 타인 명의 기부를 금지하고 있다.

 

 

또 다른 축은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이첩한 녹취에는 김 전 시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보좌관 등과 통화하며 금품 전달을 논의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녹취에는 “민주당 당직자 A씨가 돈을 달라고 해서 잔뜩 줬다”는 취지의 발언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노웅래 전 의원 보좌관 출신 김성열 전 개혁신당 수석최고위원도 참고인으로 조사받았다.

 

그는 28일 조사 뒤 “김 시의원과 관련해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하지 않았다”며 “한밤중에 취한 상태에서 답한 것뿐이고 다음날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발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겨레에 그는 “사건의 본질은 드러나 있는 내가 아니고, 민주당 당직자 등 익명 속에 숨은 사람들이다.

 

사건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모 전 서울시의회 의장은 김 전 시의원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특정 의원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김 전 시의원 측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관련해 해당 녹취에서 언급된 정치인이나 그 누구에게도 어떤 명목으로든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없다”며 “선관위 신고 내용은 허위 사실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명백한 무고”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뇌물 특검 거부는 검은돈 단절 거부, 정치 개혁 거부”라고 말했다.

 

조용술 대변인도 “공천뇌물 게이트 실체를 끝까지 밝히겠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28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 시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 참여를 대폭 제한하기로 의결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 공천으로 물샐 틈 없는 공천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제도 개선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은 26일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매수죄 처벌 강화와 함께 범죄 당사자 피선거권 20년 박탈, 재선거 시 해당 정당 후보 공천 금지 조항 등을 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구조적 문제로 진단한다. 박희봉 중앙대 교수는 조선일보 기고에서 “후보가 밀실에서 결정되면 공천은 시장이 되고 정치는 거래가 된다”고 지적했다. 청년 정치 스타트업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도 “실질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며 공천 권한이 개인에게 귀속되는 구조를 문제로 짚었다.

 

현재 김 전 시의원은 28일 서울시의회 의장에 의해 사직서가 수리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최호정 의장은 “의정 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단 한 푼의 세금도 지급되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서 윤리특별위원회는 공천헌금 수수 의혹 등을 이유로 제명을 의결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의 투명성과 권한 구조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공천이 ‘당선의 관문’으로 기능하는 한 금품과 영향력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 속에, 수사 결과와 함께 제도 개편 논의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