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현재, 나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2년째 복역 중이다. 거기에 잘못 얽힌 건이 하나 더 있어 추가 건 재판도 받고 있다. 나의 잘못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두 흩어지고 사라졌다.
나는 벌써 세 번째 이곳에 발을 들이밀었다. 첫 징역살이 때는 모든 행복이 근처에 있었다. 결혼도 하고, 하던 일이 잘 풀리는 듯 싶었다. 그러나 2017년 2월 2일 파견된 형사에게 붙잡히고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렇게 3년 형을 선고받고 어머니께 많은 투정을 부렸다. 당시엔 사회에서 쓰는 칫솔이 교도소 내로 반입 가능했었다. 그때 나는 카카오프렌즈 칫솔이 갖고 싶었고, 접견 오신 부모님께 당장 내일 그 칫솔을 넣어달라고 애걸복걸했었다. 장성급 장교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간을 내기 힘든 분들이었지만, 내 고집에 그다음 날 병가를 내고 아침 9시 접견 시간까지 칫솔을 구해다 주시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칫솔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이틀 뒤 관구실에서 나를 불렀다. ‘부모 사망’이라는 쪽지를 넘겨받았는데, 솔직히 슬프지도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발인 날이 다가왔고, 친누나의 보증 덕에 구치소를 잠시 나올 수 있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대충 맞는 옷을 걸치고 호송버스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수갑은 차지 않았지만 네 명의 교도관을 대동한 채였다. 차에서 내리니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그중 아버지의 직속 부하였던 대령 한 분이 뛰어오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했다. 그는 내게 왜 이제야 오냐고, 상주 노릇도 안 하고 꼴이 이게 뭐냐며 소리를 높였다.
그러는 사이 누나가 집사람이 말려도 완강하게 내게 오더니 따귀를 날렸다. 그리고 너 때문이라며 광분했다. 많은 이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그때 내 눈에 집사람의 손에 들린 카카오프렌즈 칫솔이 들어왔다. 그걸 본 나는 무너졌고, 그제야 쓰러져서 울기 시작했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화장이 끝난 뒤 나를 격려해 주는 것은 집사람뿐이었다. 나는 다시 구치소로 돌아왔다. 참 추운 겨울이었다. 집사람이 서류를 들고 부산에서 내가 이송된 청송 소재 교도소까지 와서 미뤄뒀던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이 성공해서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다며, 생전 처음 보는 초음파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태명은 ‘딸기’라고 했다.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고, 이름은 ○○○라고 지었다. 집사람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데려와 내게 보여주었다.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너무 행복했다.첫 딸이 생긴 뒤, 수용 기간을 늘 알차게 보내자고 각오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출소를 하고 아장아장 걷는 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뿌려진 산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 손녀예요. 엄마, 예쁜 손녀야.”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러다 이번에 하던 일 때문에 집사람을 속이고 다른 여자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고, 느낌이 안 좋다고 빨리 오라는 독촉을 받아 급하게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차로 박았다.
하던 일이 불법적이었기에 집사람은 지명수배가 되었고, 딸들은 법무부에서 지원하는 보육원에서 지내고 있다. 매일매일 수십 알의 우울증 약을 먹어도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결국 나 때문에 모두 흩어졌다.
몇 번이나 죽고 싶었지만 두 딸이 눈에 아른거리고 마음에 밟혔다. 지금은 집사람의 행방을 모른다. 자주 징역살이를 오니 결국 사회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지금도 나는 집사람을 찾고 있다. 이 허망한 마음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내게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그립다. 오늘도 너무 추운 겨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