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전달책, 9억대 피해에도 ‘집행유예’…법원 판단 배경은

法, 6억원 변제·피해자 합의 참작
사기계좌 지급정지 10만 건 돌파

 

투자 리딩방 사기 조직에 가담해 9억원대 피해를 낸 보이스피싱 전달책이 부동산을 처분해 피해를 배상하고 피해자들과 합의하면서 실형을 면했다.

 

법원은 범행 가담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보면서도 전 재산에 준하는 자산을 처분해 피해 회복에 나선 점을 이례적으로 참작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나상훈)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월부터 약 3개월간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에 따라 피해금을 인출해 상급자에게 건네는 ‘현금 인출·전달책’ 역할을 맡았다.

 

해당 조직은 ‘손실복구팀’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허위 투자 사이트로 유인하고, 홍콩 항셍지수와 나스닥지수 거래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속이는 리딩방 수법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전체 피해액은 약 9억742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A씨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해 직접 인출해 전달한 금액만 8억607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중 1명은 7억원을 편취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사회적 해악이 크고 A씨가 취득한 범죄수익도 약 5000만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양형에서는 사후 피해 회복 노력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보유하던 부동산 지분을 모두 매각해 배상금을 마련했고, 이를 통해 전체 피해액의 3분의 2를 넘는 6억49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했다. 피해자 전원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며 합의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피해 회복이 어렵고 사회적 해악이 크며, 범행 기간과 인출 규모에 비춰 죄책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을 반성하고 있는 점, 부동산 지분을 매각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피해액의 상당 부분을 변제한 점, 피해자 전원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에 한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현행 특정경제범죄법 제3조는 사기 등 범죄의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2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저지른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한편 보이스피싱 범죄 확산세도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사용된 사기이용계좌 지급정지는 10만 2131건으로 집계돼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만 건을 넘어섰다. 전년(7만 1867건) 대비 42.1% 증가한 규모다.

 

리딩방 등 투자 사기를 포함할 경우 지급정지 건수는 13만 1156건으로 늘어난다. 무작위 소액 입금 뒤 허위 신고로 계좌를 묶는 이른바 ‘통장 묶기’ 등 신종 수법이 확산하면서 피해 양상도 복잡해지는 추세다.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전달책은 단순 가담자로 보이더라도 범죄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통상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건처럼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이뤄지고 피해자 전원과 합의가 성립된 경우에는 양형에서 유리하게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 재산에 준하는 자산을 처분해 피해를 배상한 점은 법원이 예외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사정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며 “전달책 역시 조직 범죄의 일원으로 기능한 이상 형사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