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동 상층에서 지내던 〇〇입니다. 주임님은 안양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아직도 제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 주시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제가 현재의 소로 이송 온 지 어느덧 석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저는 아직도 주임님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주임님을 처음 만난 건 제가 수용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계속 입실 거부를 하던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 주임님이 해 주신 말씀을 저는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진짜 아무 짝에도 쓸모 없고, 한심하고, 반성하지 않는 인간은 자기를 탓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안 그러고 뻔뻔하게 잘 살고 있어. 너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책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야. 그러니까 힘내.” 주임님의 그 말이 그 순간 살아갈 용기를 잃었던 저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두 팔 걷어붙이고 저를 도와주시고는 “이 정도야 뭐,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줘야지” 하시던 말씀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제 탓만 하고 살았던 것 같고 태어난 것을 후회한
사랑하는 아버지. 많이 위독하시다는데 제가 과연 저혼자 가슴 아파하면서 아버지가 건강하시길 바라는게 맞는지 이런 걱정조차 하는 제가 너무 원망스럽니다. 항상 착하고 열심히 살라고 가르쳐 주신 아버지. 평생 당신의 삶을 통해 몸소 보여주시며 지금도 그렇게만 살고 계시는 내 아버지. 가르쳐 주신 그 뜻과 가르침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서, 이곳에 와서야 너무 늦게 알아가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요새 드라마나 영화에서 생을 다시 시작하는 주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다양한 욕망을 챙취하고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저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 조금 더 일찍 아버지와 하늘로 먼저 가신 어머니의 마음과 뜻을 헤아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꿈 같은 소망이지만요. 아마 이 글을 보시면 아버지는 분명히 “지금부터라도 잘해라.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라!” 하실 겁니다. 맞죠? 지금까지 제 모습이 완전히 다듬어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불효자는 걱정 마시고, 그저 아버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이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이곳에서 지내면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작업장으로 향하는 일상이 이제는 제법 몸에 익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배정을 받았을 때는 낯선 환경과 종일 이어지는 작업이 고되게만 느껴졌지만, 이제는 묵묵히 손을 움직이는 이 시간이 제게 가장 귀한 가르침을 주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지만 잡념을 지우고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이마와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팔다리가 뻐근해지고 작업복이 땀에 젖어갈 때쯤이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때마다 제 안에 가득 차 있던 허영심과 이기심, 헛된 욕심들도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부끄럽게도 예전의 저는 땀 흘려 얻는 것의 소중한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쉽게 무언가를 쥐려고 요행을 바라기도 했고, 정직한 과정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결과만을 좇기에 바빴습니다. 그 어리석고 얄팍한 마음이 결국 제 삶을 무너뜨리고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이곳 작업장에서 매일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대가 없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땀 흘리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제 삶에 꾸준한 노력이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남들이 땀 흘려 정직하게 일할 때 저는 어떻게 하면 더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 전부터 저는 직업 훈련 과정에 참여해 작은 자격증 하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굳어버린 머리와 거칠어진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펜을 쥐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답답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책을 덮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꼼수를 쓰지 않고 오직 제 땀과 노력만으로 정직하게 무언가를 이뤄내는 경험을 제 자신에게 꼭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보다 제게 더 값진 것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아 묵묵히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견디는 시간 그 자체입니다.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평범한 일상은 이렇게 하루하루 벽돌을 쌓듯 정직한 노력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진리를 이제야 배웁니다. 출소 후 다시 마주할 사회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잘 압니다. 전과자라는 따가운 시선과 수많은 질타 앞에서 몇 번이고 좌절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거처럼 화려한 성공이나 일확천금을 좇는 일은 두
면회실 유리창에 손을 올리면 차가운 냉기 사이로 어머니의 투박한 손등이 겹쳐옵니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늘 부엌에 계셨지요 생선 비린내 밴 앞치마를 닦으며 막 지어 올린 뜨거운 밥 위에 손으로 찢은 김치 한 조각 얹어주시던 그 손 못난 아들 밖으로 나도는 게 걱정되어 대문 밖까지 맨발로 쫓아 나와 구겨진 지폐 몇 장 손바닥에 쥐여주시며 “밥은 묵고 댕기나” 물으시던 목소리 그때는 그 손이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요 그 축축한 사랑이 왜 그리 무거웠을까요 여기, 닫힌 문 안에서 거울을 보면 어느새 어머니를 닮아가는 내 얼굴이 보입니다 가르쳐주신 정직한 길은 다 팽개치고 어머니 가슴에 대못이나 박고 들어온 죄인 창살 너머 계절은 수없이 바뀌어도 어머니 계신 그 집 안방 아랫목은 여전히 저 때문에 차갑게 식어 있겠지요 어머니, 부디 저를 잊으세요 이 불효자가 돌아갈 날을 세지 마세요 제일 가슴 아픈 건 당신 가시기 전 따뜻한 밥 한 끼 지어드리는 것보다 여기서 내 한 몸 건사할 걱정부터 하고 있는 이 못난 아들의 비겁한 심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역시 죄를 짓고 담장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 수용자입니다. 평소 많은 수용자가 탐독하는 더시사법률을 보며 법률 지식도 얻고 세상 소식도 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곳의 제보 기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수용자들의 행태를 보며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본인이 가해자임에도 피해자인 척 언론에 제보하거나, 규정을 어겨 문제를 일으키고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신문사를 번거롭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함께 지내던 수용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위 사실을 제보해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악의적인 모습도 보입니다. 물론 신문사에서 철저히 사실 확인을 거치겠지만, 반성해야 할 시간에 또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음해하려 애쓰는 그 수고로움 자체가 같은 수용자로서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의 비뚤어진 행태를 지켜보던 저는 문득 괴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악질적인 모습이 마치 사회에 있을 때 제 모습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상처받았던 피해자의 눈에, 그때의 나는 바로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한 채 내 이익과 변명만을 앞세웠던 제 과거가 겹쳐보여 고
안녕하세요. 저는 마약사범으로 현재 26개월째 복역 중이고, 총 형량은 투약과 판매로 8년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저도 처음에는 호기심과 지인의 권유로 마약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마약을 투약하는 순간 평범한 사람에서 마약 범죄자로 탈바꿈되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동안 일궈온 자신의 커리어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 주변 지인들도 다 떠나고 결국 내 곁에 남는 건 마약에 관련된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마약에 더 중독되게 되고 마약 중독으로 인해 생기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인 조현병, 망상증, 편집증에 걸려 일상생활도 불가능해지며 거리를 돌아다니기 두려워 항상 숨어 살게 됩니다. 이 증상은 마약 중독자의 90%가 겪는 증상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현실과 망상을 구별하지 못해 결국 강력범죄로 이어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운이 좋아서 마약에 중독됐음에도 살아남았고 남을 해치지 않았다 해도 평생을 마약범의 타이틀을 달고 교도소나 들락거리며 살게 됩니다. 우스갯소리로 마약범들을 ‘단타형 무기수’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여보, 방금 편지를 읽어서 소식 들었어. 진통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을 당신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다가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는 말에 그저 주저앉아 한참을 울어버렸네. 좁은 방 안에서 나는 죄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데 밖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생명이 태어났구나. 축복받아야 할 아이의 첫 순간에 아비라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당신에게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 끓여주지 못하는 내 처지가 오늘처럼 원망스러운 적이 없네. 여보, 아이를 품에 안고 당신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라도 나 같은 못난 사람 만난 걸 후회하진 않았을까, 아이의 얼굴을 보며 기쁨보다 막막함이 앞서지는 않았을까... 그 생각을 하면 미안해서 숨이 막혀와. 하지만 편지를 다시 읽을때 마다 내게 전해진 아이의 첫 숨소리가 이곳의 차가운 벽을 뚫고 내 심장을 때리는 것 같아. 그 작은 생명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어. 그동안 나는 참 이기적이게 살았지.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만 해. 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아빠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었을 때, 당신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떨구지 않게 만들게. 비록 시작은 이렇게 엉망이었지만 내 남은 생은 오직 당신과 우리 아이를 위해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아기가 태어난 지 24일 만에 구속되어, 청주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편의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편을 향한 사랑과 그를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씁니다. 전국의 모든 재소자가 하루빨리 따뜻한 가정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이 머무는 그곳은 좁고, 뜨겁겠지요. 나는 매일 아침, 당신이 보지 못하는 하늘을 대신 바라봅니다. 그 하늘 햇살 한 조각을 접어 이 글에 담아 보내요. 우리는 실수 속에서 배우고, 아픔 속에서 단단해진다고 하지요. 중요한 건 그 잘못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당신의 하루가 무겁게 흘러가는 동안 나는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기억을 붙잡고, 희망을 붙들며 살아갑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그저 스쳐 가는 문장일지 몰라도, 당신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림의 증거이길 바랍니다. 오늘도 나는 당신의 이름을 속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당신은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돌아올 거라는 걸. 당신이 돌아올 자리가 여기 있습니다. 돌아오는 그날, 당신의 이름 앞에 아내라는 이름으로 서 있겠습니다. 이 글이 혹시라도
어릴 적, 우리 세 남매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잘 받지 못하며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헤어지셨고, 도망치듯 떠난 어머니를 뒤로한 채 아버지의 손에 맡겨졌었는데, 아버지 역시 우리를 데리고는 있었지만 우리에게서 도망치는 듯했다.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사도 정말 자주 다니고, 이사를 거듭할수록 집의 크기도 점점 작아졌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일한 방이자 거실에서 함께 자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시다가 갈수록 오랫동안 집을 비우셨다. 사흘, 나흘…. 일주일…. 그렇게 우리는 우리끼리 지내게 되었다.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어린이집 봉고차가 오면 동생을 태워 보냈고 누나와 나는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도 누나와 함께 집으로 걸어왔는데, 오는 길에는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두고 간 돈으로 디지몬 빵을 사 먹었다. 500원, 학교 급식과 500원짜리 디지몬 빵이 우리의 하루 양식이었다. 디지몬 빵은 매일 먹다시피 했지만 질리지 않았다. 항상 두 개를 먹고 싶은데 사 먹을 돈이 부족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오늘 두 개를 먹으면 내일은 못 먹으니까. 그때는 그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오셨다.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