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수천 건의 형사재판을 거치며 확신한 것이 하나 있다. 무죄는 ‘진심’이 아니라 ‘의심’으로 얻는 것이다. 무죄를 얻고자 하는 피고인은 늘 말한다.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합니다.” 안타깝게도 법정은 진실 여부만을 묻지 않는다. 형사재판은 ‘유죄라는 확신’이 없는 경우 무죄를 선고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변호인의 역할은 명확하다. 판사에게 유죄를 단정할 수 없다는 ‘의심을 심는 일’, 그것이 곧 ‘무죄의 기술’이다. 무죄 변론은 증거 선별에서 출발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 중 어떠한 증거를 내용부인할 것인지, 부동의할 것인지, 혹은 입증취지를 부인할 것인지 선별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증거기록 전체를 면밀히 분석한 뒤 이를 전략적으로 선별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막대한 시간과 노동을 요한다. 증거기록이 수천 쪽에서 수만 쪽에 이르는 사건에서는 그 기록을 검토하는 데만 한 달이 꼬박 소요되기도 한다. 더욱이 증거 동의 여부에 관한 판단은 재판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증거 기록의 경우 부동의 사유도 일일이 정리해 두어야 한다.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검사의 증거’를 얼마나 제거 할 수 있
1심에서 무죄 주장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항소심에서 다시 무죄 주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증거란, 꼭 기존의 증거 기록에 없는 바깥에서 뭔가를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기존 증거 기록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1심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 기록에서도 모두가 놓쳤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1심에 출석한 증인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증인이 거짓말을 한 경우, 항소심에서 다시 불러 다투어서 원심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증거’가 되고 무죄를 받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과거 변론했던 사건 중에도 1심 증거 기록 속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 판결을 뒤집은 사례가 있었다. 그 사건 의뢰인은 여러 개의 계(契)를 운영하면서 고소인으로부터 계불입금을 받았는데, 이를 반환하지 못해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운영된 계도 있었기에, 해당 계불입금은 무죄를 다투어야 했다. 문제는 양측 사이에 금전 거래가 너무 복잡하여 무죄를 주장
수사 중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국 구속되었다면,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구속기간을 고려해 매우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당신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바로 이 시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방어권의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구속되었다고 해서 수사기관의 흐름에 그대로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시기는, 당신의 입장이 공식적으로 수사기록에 남는 마지막 시점입니다. 이때의 진술과 대응은 향후 재판 전반을 이끄는 기본 골조가 됩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해명이나 감정 호소로는 부족합니다. 전략을 세우고 대응을 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변호인은 단순히 법률적 조언만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사기록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 수사관과 검사 앞에서 당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법적 방패입니다. 혼자서 대응하지 마시고, 반드시 수사에 변호인이 동석하게 하십시오. 변호인과 함께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전략을 세우고, 진술 하나하나에 신중하게 접근해 수사기록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어의 시작이자, 재판 결과로 인해 얻게 될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도 세상 밖에서 얽혀 있는 금전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아직 회수하지 못하였거나, 거래나 계약으로 인해 받아야 할 금액이 남아 있는 경우, 교도소에 있다고 하여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재소자의 신분이라도 민사 절차를 통해 채권을 추심하고 권리를 지키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채권 추심의 첫 단계는 상대방에게 공식적으로 지급을 요구하는 일이다. 구두나 전화로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훗날 증거가 되지 않으므로, 내용 증명 우편이라는 수단을 활용하여야 한다. 내용 증명은 ‘언제, 어떤 요구를 누구에게 하였는지’를 공적으로 증명하는 문서이며, 재소자 본인이 직접 발송할 수는 없지만, 가족, 지인, 또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문안을 작성하고 위임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내용 증명에는 빌려준 날짜와 금액, 상환 기한, 상환이 지연된 사유, 그리고 일정 기한 내에 변제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개시하겠다는 경고 문구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용 증명을 보냈음에도 상대방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지급을 회피하는 경우, 다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절차는 지급 명령 신청이다. 지급 명령은 일반적인
나는 30년간 형사재판정에 서 왔다. 수천 건이 넘는 형사 사건을 수행하며, 억울한 사람도 봤고, 마땅히 죗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도 보았다. 법정에서 때로는 유죄 선고가 너무 가볍게, 또 때로는 무죄 선고가 너무 쉽게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이 법정에 과연 정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그 질문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1995년,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제이 심슨 사건’이다. 미국 풋볼의 영웅이자 배우였던 오제이 심슨은 자신의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친구 론 골드먼을 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모든 정황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해자의 피가 묻은 그의 차량, 자택에 남겨진 피 묻은 장갑, 수차례의 폭력 전력, 심지어는 도망치듯 경찰을 피해 도주한 장면까지 공개되며 미국 국민 대부분은 ‘그가 유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제이 심슨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를 이끌어 낸 결정적인 증거는 ‘글러브’였다. 검찰이 제시한 피 묻은 장갑을 법정에서 직접 착용해 본 심슨은 “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장갑이 맞지 않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변호
최근 ‘형식적 공탁’이나 ‘기습적 공탁’에 대한 재판부의 경계가 높아지며, 공탁에 대한 질문이 부쩍 많아졌다. 실제로 많은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이 합의가 어려울 때 공탁을 대안적 수단으로 고려하지만, 공탁이 항상 유리한 정상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공탁까지 했는데 왜 실형이 나왔을까요?”라는 질문은 최근 형사재판에서 자주 들려오는 의문 중 하나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공탁금을 실제로 수령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의 ‘피해 회복 노력’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감형 사유로 삼는 경우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양형기준이 훨씬 엄격한 방향으로 정비되면서 이러한 형식적 공탁이 양형에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명확하게 수령 거부 의사를 밝혔고 그 사실이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공탁금도 회수하지 못하고 양형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 사례가 실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는 공탁제도의 법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현행 공탁법상 피고인(공탁자)이 공탁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피해자(피공탁자)가 공탁소에 직접 ‘서면’으로 수령
‘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귀신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재래식 변소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예전에 맡았던 마약 사건의 증인신문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증인에게 “검은 봉투였나요, 투명한 봉투였나요?”를 집요하게 질문하여 결국 마약 전달책으로 지목된 피고인의 무죄를 받아냈다. 우리 의뢰인은 마약 전과가 있었고, 이번에 또 마약을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의뢰인에게 마약을 전달했다는 제보자는 장소, 시간, 정황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나는 의뢰인과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담하면서,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무죄를 다퉈보기로 했다. 증거기록에는 제보자가 의뢰인에게 전달했다는 마약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투명한 봉지에 마약이 담긴 사진. 그런데 제보자의 진술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처음 조사에서는 분명 ‘검은 봉투에 포장해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투명한 봉투’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봉투 색깔을 헷갈렸다는 건
1심 판결 선고 결과에 대해 불복하여 항소심을 진행할 때,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마다 달리 판단해야 하겠지만, 우선의 기준을 제시하자면 1심 판결의 양형 이유를 보고 결정하면 효과적이다. 양형 이유에는 판사가 어떤 이유로 선고형을 정했는지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풀이해 놓고 있는데, 특히 불리하게 판단된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유리하게 변경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절도, 사기, 상해 등과 같이 혐의가 명백하고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서 1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였음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면, 항소심에서는 양형 부당으로 다투되 결국 피해자와의 합의 및 처벌 불원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양형 요소다. 특히 1심에서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았다면 항소심에서는 반드시 합의를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법원에 양형 조사 신청을 하여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함에 있어, 당사자 또는 당사자 가족이 직접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하게 되면 피해자는 감정이 앞서거나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금액으로 처벌 불원의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변호사의 중요한 능력이다. 또한, 보이스피싱이나 재테크 투자, 가상화폐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거나, 구속 수사를 받는 중에 배우자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이혼 소장을 받는 재소자 입장에서는 황망하기 그지없다. 교정시설이라는 특수한 환경 탓에 외부 소식을 제대로 접하기도 어렵고, 이혼 사유로 적힌 내용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즉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감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이혼 소송에서 불리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감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이혼이 자동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혼 소송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혼인 관계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그 파탄에 대해 어느 쪽이 더 큰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이혼을 원하는 사람이 주장하는 ‘사유’가 법적으로 인정될 만한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귀책 사유’에 대한 판단이다. 법원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이는 단순히 결혼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누구나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혼인 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혼 청구 자격이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쉽게 말해, 가정을 깨뜨린 사람은 스스로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취지다. 예를 들
형사절차는 고소‧고발, 수사기관의 인지, 또는 타 사건과의 연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작된다. 가장 흔한 경우는 피해자 또는 이해당사자가 제출한 고소장 또는 고발장에 의해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인데, 수사기관이 고소장을 검토하고 ‘혐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형사절차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때 피의자는 대부분 예상치 못한 통보에 놀라거나 당황하게 마련이다. 같은 시각 고소인은 고소장을 작성하고, 고소인 보충 진술조서(참고인조사) 작성함으로써 자신이 알고 있는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대해 수사기관에 알린다. 이로 인해 수사의 초반 단계는 자칫 고소인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방향으로 흐를 위험도 존재한다. 이때 피의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소인이 명백한 허위 사실을 고소하거나 피고소인이 고소내용에 대해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 독자적으로 소환조사에 적극 응하여 조사를 받으면 되지만, 실무적으로 수사관이 전화나 서면으로 소환 통보를 하는 경우 구체적인 혐의사실을 고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건을 분석한 후 법리적 대응을 하기 위해 최초 피의자신문 단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여 입회하에 조사를 받는 것을 추천한다. 즉, 이때가 골든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