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야.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넌 무슨 생각을 할까? 서투르고 부족한 나이지만 이 자리를 빌려 제대로 내 마음을 전하려고 해. 우리는 참 특별한 인연이자 운명이었고, 필연이었지. 만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서로가 있어 기대고 이겨 왔잖아. 여보가 내게 먼저 고백도 하고 프로포즈도 했었지?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날이었어. 이제 네 곁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한 번의 겨울만 보내면 되는데 조금만 힘내고 버티고 있어 주라. 더 행복하게 해 줄게. 네가 웃는 날 많이 만들어 줄게. 나랑 평생을 약속해 줘서 고마워. 늘 내 자존감을 높여 주고, “오빠 같은 사람이 될 게”라고 말해 주는 네게 많이 감동받았어. 이젠 내가 말하고 싶어. 우리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들과는 다르게 행복하고 예쁜 가정 꾸리고 살자. 이○○, 나랑 결혼해줄래? ○○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평범하고 익숙한 속담이 얼마나 무거운 진리였는지 저는 요즘 매일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직 제 욕구만 앞세우며 살아왔습니다. 제 이기심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오만하고 배려 없는 삶의 태도가 결국 제 자신을 이 좁은 곳에 구속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제한된 환경과 불안감 탓에 날이 서 있고 포용심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타인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지 못했던 태도 탓에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며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설령 그 과정이 쉽지 않고 내 살을 깎아내는 것처럼 아프더라도 말입니다. 원치 않아도 부대끼며 지내야 하고 모든 것이 통제된 상황이기에 얼굴 붉힐 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난날처럼 타고난 성정대로 서로에게 쉽게 화를 내고, 다투고, 참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아무런 반성도 배우지 못한 채 멈춰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저는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재판을 위해 출정을 나갈 때는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채 이동해야 하고 인원 확인을 위해 이름을 부르면 관등성명처럼 크게 대답해야 합니다. 절차 하나하나가 숨 막힐 정도로 엄격하게 진행됩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긴장된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제 이름이 불려 대답하고 앞으로 나갔고 뒤이어 한 사람의 이름이 호명됐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줄에 섰습니다. 직원이 몇 차례나 다시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버스에 올라 재판장에 도착해서 다시 줄을 세울 때도 그 사람은 이름이 불리자 대답 없이 손만 들어 보였습니다. 예외가 용납되지 않는 이곳에서 혹시 억하심정에 반항하는 것은 아닐까 저를 포함한 모두가 긴장된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뚫어져라 보던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혹시… 말씀을 못 하시는 분입니까?” 그러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그 사람을 바라보던 제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섣불리 그를 반항하는 사람, 문제아로 단정 지으려 했던 제 오만한 태도가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습니
내 나이 사십 중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무엇이 옳은 삶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탐욕과 불안 속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결국 나 스스로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넉넉하지 못했던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았어야 했다. 겸손하고 소박한 삶 속에서 감사를 찾는 인생이어야 했다. ‘지족상락(知足常樂)', 만족함을 알면 인생이 즐겁고,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 만족을 아는 사람이 제일 큰 부자라는 말을 이곳에 와서야 배우게 되었다. 지난 과업을 돌아보며 나를 성찰하는 중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탐욕을 버리고 만족을 아는 마음을 갖자.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단초였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간 감사도, 만족도 모르던 내 삶은 스스로도 불행하고 주변인들까지 파괴하는 껍데기 같은 삶이었다. 그 결과 내가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그 결핍이 얼마나 많은 이를 힘들게 괴롭혔던가!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려 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내가 얼마나 갈고닦을 곳이 많은 모난 인생이었는지 알게 됐다. 나를 바로세우고, 내가 입힌 피해를 직면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진창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다
이곳에서 저는 본래의 이름 대신 숫자, 그러니까 '수용번호'로 호명됩니다. 태어나는 순간 허락받은 나의 고유한 성질 중 하나가 이름인데, 그걸 잃어버리고 말았네요. 수번이 불리는 매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어 가슴이 옥죄는 듯합니다.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한 사람에게는 이름조차 허락되지 못한다는 게 뼈저리게 와닿거든요. 이렇게 죄의 무게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제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포항교도소 주임님, 계장님이십니다. 소영 주임님과 은혜 주임님, 선아 주임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가 포항으로 이송을 온 뒤 적응하지 못하고 흔들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담당 계장이신 임현주 계장님께서 저를 묵묵히 도와주셨어요. 단호하면서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저를 봐 주신 계장님 덕분에, 어떤 마음으로 참회하며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주임님, 계장님들.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저희 수용자들을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저희에게 주신 가르침 잊지 않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더시사법률>의 창간 1주년 소식을 접했습니다. 좁은 수용실 안에서 신문을 읽으며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어 조심스레 감사의 글을 적어 보냅니다. 법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다는 것이 누군가의 일상을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일인지 저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사건 사고를 다루는 법원사회 면의 수많은 사건, 비극들을 읽을 때마다 제 이기심이 만들어낸 죄의 무게와 피해자분이 겪어야 할 상처의 깊이를 매일같이 직시하고 있습니다. 신문 속에 담긴 전문가분들의 법률 해석과 실제 판례들을 읽는 것은 결코 얄팍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법과 타인의 고통에 무지했던 제 모습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겁했는지 깨닫고 오만했던 제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한 참회의 시간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법과 제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짚어주는 언론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와 격리된 이곳 수용자들에게 정확한 법률 지식과 사법계의 이슈를 전달하는 것은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을 막고 사회의 엄중한 규칙을 다시 배우게 하는 훌륭한 교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귀 언론사가 전하는 공익적인 메시지들이 세상에 널리 읽혀
크리스마스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들어가서 먼저 자."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엄마의 목소리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늘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엄마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입에 댔고, 취할 때마다 할머니를 괴롭혔다. 악몽 같은 날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할아버지를 더욱 원망했다. 할아버지만 없었다면 할머니는 행복했을 거라고. 그럼에도 엄마는 매년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난 그게 끊어낼 수 없는 잔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경주의 한 관광지를 가꾸는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술을 마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없는 허전함을 이렇게 푸는 거냐며 할아버지를 자주 나무랐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엄마와 이모, 삼촌 모두 울지 않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장례식장이라니.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엄마와 이모가 눈물을 터트렸다. 모든 조문객을 돌려보낸 뒤, 갑작스럽게 홀로 떠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말을 하지, 왜 그렇게 외롭게
나는 다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바른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속죄의 시작이라 믿는다. 진정한 삶은 내면을 지향하며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정체되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남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겉치레에만 집중했던 내 지난 날들은 후회로만 남아있다. 그동안 나는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법을 몰랐기에,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단 한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고요와 적막은 나의 거울이 되어 비겁하게 숨겼던 내 민낯을 가감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낡고 이기적인 생각들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새로운 마음과 생각들로 채울 것이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에 책임감을 느끼며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의 무게를 잊지 않고, 남은 생은 오직 바른 길만 걸을 수 있도록 전념할 것이다.
어느덧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지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제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옛 사진을 꺼내 보곤 합니다. 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은 늘 그대로인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집니다.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살아오신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면, 지금의 제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느껴집니다. 이곳에서 좁은 공간 안에 머무는 시간 동안 제가 저지른 잘못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과 가볍게 넘겼던 선택들이 얼마나 큰 결과로 이어졌는지도 뒤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하고 있습니다. 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과 저를 믿어주셨던 어머니께 드린 상처와 실망을 생각하면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며, 진심으로 뉘우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저를 보셨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세상에 보탬이 되는 바른 길만 걷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10, 7, 10, 8, 55. 앞의 네 개 숫자는 지금까지 제가 받았던 형량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숫자는 현재 저의 나이입니다. 앞으로 4개월만 지나면 다시 사회로 돌아갑니다. 55년 인생 중 35년을 담 안에서 보낸 전과 4범인 저, 이번에는 사고 치지 않고 잘 살 수 있을지 백 퍼센트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매번 재범 안 하겠다 다짐하며 출소하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으니까요. ‘재범의 우려가 높다’고 평가받아 이번에는 전자발찌 10년이 추가됐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없었는데, 발찌를 생각하면 더 아득해집니다. 이제는 나가서 반바지도 못 입고, 찜질방도, 해수욕장도 갈 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자업자득인데, 누굴 원망할까요. 재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재판장님께서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기에 피해자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헛웃음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피해자분이 재판장에 찾아와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다. 제가 이토록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 저로 인해 생긴 수많은 피해자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께서는 제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