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의 변호사 다이어리] 변호사에게만 허락된 만남, 접견 가는 길(1)

바깥 세상과 단절된 철문 안 구치소
변호인을 반가워 하는 수용자 얼굴
범죄자도 변호인 조력권은 허용해
전 세계로 퍼진 ‘미란다 원칙’ 고지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피의자 접견을 가는 날이다. 서초동 사무실에서부터 차를 직접 운전해서 예술의 전당 앞 지하 터널로 파고들어 과천을 관통한 다음 인덕원역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틀어 의왕으로 향한다. 구치소 주소는 네비게이션이나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면 적이 우리나라를 교란시키기 위해 교도소 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위치는 보안 사항이다. 원래는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외곽으로 접어들면 소풍을 가는 것처럼 기분이 들뜨지만, 구치소에 가는 길 위에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묵직한 자동차처럼 착 가라앉는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을 가장 실감할 때가 구치소로 접견하러 갈 때다. 접견은 오로지 변호사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도, 검사도, 대통령도, 가족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면 구치소 입구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트 밖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하지만, 내가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 바리케이트가 올라가고 차를 구치소 뜰 안에 주차할 수 있다. 수용자(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가족조차 하루에 면회는 10분만 가능하지만 변호사는 원칙상 시간 제한 없이 접견이 가능하다.


주차를 하고 구치소 입구에서 변호인이 들어가는 창구로 다가가서 변호사 신분증과 함께 휴대폰, 약, 노트북 같은 물건들을 다 맡긴다. 그러면 창구에서 구치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목걸이가 달린 플라스틱 패스를 건네어준다. 그 패스를 들고 10톤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들이받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육중한 철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철문이 서서히 옆으로 열린다.

 

그 안으로 들어서서 가방을 스캐너에 넣고 나는 금속탐지기를 통과한다. 그리고 또 다시 흰색 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리면 나는 교도소의 영토 안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드라마 ‘도깨비’를 보면 도깨비가 어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캐나다의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나도 흰색 문을 통과하면 교도소 안이라는 완전히 낯선 세계로 순간이동을 해온 것 같다.


이곳은 외부 세상과 물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 마저도 멈추어 선 것 같다. 그래서 뜰 위로 내리쬐는 햇볕마저 낯설도록 한갓지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을수록 세상과 괴리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뜰을 20미터 정도 걸어가 접견실 건물에 들어서서 2층으로 올라가면 접견을 위한 사무실이 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기역자로 소파들이 놓여 있고 그 앞에 이런저런 신문들이 펼쳐져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접견을 기다리는 변호사들을 위한 공간이다.


사무실 문 안쪽 오른편에는 접견실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고, 그 문 앞에 수문장처럼 교정공무원들 너덧 명이 책상에 앉아서 접견 절차를 관리하고 있다. 내가 미리 준비해 온 접견신청서를 교정공무원에게 제출하면 교정공무원은 그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수용자를 접견실로 부른다.

 

수용자가 나와서 접견실의 문 앞에 대기하면, 교정공무원이 나를 부르고, 나는 접견실 문턱을 넘자마자 선 채로 수의를 입은 수용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 문턱을 넘을 때는, 마치 판문점의 남북 분계선을 넘듯이 너무 간단하고 수월해서 어색할 지경이다.


접견을 갈 때마다, 그렇게 선 채로 처음 마주한 수용자의 얼굴이 반가움과 기대감으로 환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종일 갇혀서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있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반가울 것이다. 혹자는 군인들이 친구가 면회를 오면 반가워하는 것이 연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수용자가 처음 변호인 후보자를 보고 반가움과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깊은 이유가 있다. 그냥 면회를 온 친구는 정서적인 교감과 지지를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변호인은 수용자의 유무죄를, 석방여부를, 형량의 정도를 좌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경찰이 누군가를 체포하면서 진술거부권(묵비권)이 있다는 것 외에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사기관이 체포할 때 반드시 이런 말을 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미란다 원칙’이라 한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체포나 구금된 사람은 곧바로 석방되고 그 동안 피의자가 작성한 진술조서나 진술서도 효력을 잃어서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가 없게 된다.


‘미란다’ 원칙은 1960년대 미국에서 18세 소녀를 강간한 ‘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의 이름을 딴 것이다(미란다만큼 모든 시대를 통틀어서 유명한 범죄자는 없을 것이다). 미란다는 체포된 직후 모든 범행을 자백하는 진술서를 썼고 이를 근거로 주법원이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이 당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범죄 혐의자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변호인 조력권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미란다에 대해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다른 증거로 감옥에 갔고, 출소 후 술집에서 싸움을 하다 가슴과 배에 칼이 찔려 숨졌다).

 

이 판결의 취지는 ‘미란다 원칙’이 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 헌법 제12조 제5항도 “누구든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 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