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하에 했다고 생각했는데… 강간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술자리에서의 만남이 인생이 뒤집히는 순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 특히 많이 의뢰되는 유형이 있는데 바로, 술에 취해 처음 만난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후 며칠 뒤 강간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경우다.
의뢰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합의하에 이뤄진 성관계였습니다. 서로 좋아서 한 거예요.”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주장을 간단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많은 의뢰인들이 오해를 하고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수사가 되죠?”이다. 이와 같은 의뢰인들의 질문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강간 혐의는 ‘증거’가 없어도 수사가 시작된다. 강간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수사가 시작될 수 있고, 기소 및 유죄판결까지 이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범죄다. ‘진술 대 진술의 싸움’인 것이다.
수사기관에 기재된 진술 한 줄로 인생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강간 사건이다.
상대가 술에 취했을 때는 특히 위험하다. 형법상 강간은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를 말한다. 문제는, 술에 취한 상태의 동의는 법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이렇게 진술할 수 있다.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취해 있어서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피의자는 보통 이렇게 주장한다.
“서로 좋아하는 분위기였고, 명확한 거절은 없었습니다.”
“키스도 먼저 했고, 오히려 적극적이었습니다.”
“다음 날까지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피해자의 거절을 인식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가 핵심이 된다는 점이다.
형사판결은 ‘의도’보다 ‘객관적 상황’을 본다. CCTV, 녹음, 메시지, 의료기록 등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말’이 곧 증거가 되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다. 결국 진술, 즉 ‘말’의 신빙성이 재판의 중심이 된다.
따라서 강간 사건의 피의자는 상대방과의 문자·카톡 내용, 성관계 전후의 상호 분위기, 술자리 당시의 제3자 진술, 피해자의 주장과 모순점 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경찰은 이를 기반으로 신빙성을 비교하고, 검찰은 ‘유죄로 볼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 있는지 판단하게 된다.
전략 없이 대응하면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피의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무작정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중요한 건 자신의 진술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피해자의 진술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만약 사건에 대해 인정을 한다면 반성 및 재발 방지 태도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맡았던 사건 중 이런 경우가 있었다. 국민참여 재판으로 끌고 갔던 사건이기도 하다.
의뢰인은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 성관계를 했고 며칠 뒤 강간으로 고소를 당했다. 당시 초반 수사는 의뢰인에게 매우 불리하게 진행됐다.
피해자는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무시당했다”라고 진술했고, 의뢰인은 “술에 취한 상황에서도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 단순한 감정 호소나 억울함만으로는 결코 결과를 바꿀 수 없었다.
술자리 전후의 CCTV를 확보하고, 성관계 이후 주고받은 문자 복원, 피해자의 진술 내 모순점 분석, 의뢰인의 정리된 진술과 일관성 강조를 취했고, 확보된 증거를 바탕으로 검찰과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무죄를 받았다.
술에 취한 상태의 성관계는 언제든 성범죄로 번지기 좋은 경우다. 특히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로 작용하는 경우, 초기 대응이 사건의 향방을 결정짓는 절대적 변수가 된다.
억울한 감정만 내세우기보다 전략이 필요함을 명심해야 한다.
진술, 증거, 정리된 대응자료 등. 이 모든 것을 함께 준비할 전문가의 조언이 중요하다.
혹시 지금, 성범죄 혐의로 인해 마치 자욱한 안갯속에 갇힌 듯 막막하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길 바란다.
스스로 억울함을 주장하기보다는 그 억울함을 증명할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기 바란다.
그렇게 함께 하나씩 준비해 나가다 보면, 안갯속 저 너머로 작은 불빛이 하나 보일 것이고, 그 불빛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안개에서도 벗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