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태하] 사기죄, 그 애매모호함에 대하여

구성요건 단순해 보여도 판단 어려워
정황과 해석에 따라 고의로 보기도
과정보다 피해 결과 중시되는 사기죄
법적 판단 위한 입체적 해석이 중요

“정말 내가 사기꾼인가요?


이 질문은 형사사건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형사사건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다뤄지는 범죄유형 중 하나가 바로 사기죄다. 겉으로는 단순한 범죄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범죄 중 하나다.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수많은 사기 사건을 접해봤지만 사기죄만큼 기소 여부를 두고 깊이 고민하게 되는 범죄도 흔치 않았다. 동일한 사실관계를 두고 검사들 사이에 판단이 엇갈리거나, 법정에서는 변호인과 검사가 치열한 논리 싸움을 벌이기 일쑤였다.


이처럼 사기죄는 법리적으로나 사실관계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피고인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왜 사기꾼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법적으로 사기죄는 네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1.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기망)
2. 그로 인한 상대방의 착오
3. 재산상 처분행위
4. 고의

 

이 네 가지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사기죄’가 성립된다.

 

언뜻 보기에는 구성요건이 단순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요건들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많고, 판단이 쉽지 않다.


“과장해서 말했을 뿐, 아예 거짓은 아닙니다.” 라는 해명은 사기 사건에서 피고인이 가장 자주 내놓는 해명 중 하나다.

 

문제는 '상대방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중요한 정보를 받았는지'이다.

 

예를 들어, 전체 정보 중 70%는 사실이고 30%만 거짓인 경우에 사기죄는 성립할까? 만약 그 반대라면? 또한, 거짓말한 부분은 상대방의 결정에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하고 핵심적인 정보인가?

 

등의 질문처럼, 사기죄를 논할 때에는 거짓으로 말한 정보가 얼마나 결정적인 요소였는지를 따져야 하므로, 판단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와 “갚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단 돈부터 받았다”라는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후자의 경우에는 형법상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둘 사이의 차이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황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사기죄는 말 한마디, 계약서에 쓰인 단 한 문장에 따라 유무죄의 판단이 엇갈릴 수 있는 범죄다.

 

경험 많은 검사들조차 사기 사건을 배당받으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걸 기망으로 볼 수 있을까?”, “혹시 단순한 채무불이행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품고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변제 능력이나 기망의 의도는 사건이 발생한 전후 상황, 거래 방식, 금전의 성격, 금전 사용처, 피고인의 진술 태도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만으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기록을 보면 볼수록 사건의 실체가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궁에 빠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이러한 사기 사건의 특성 때문인지, 실제 수사 및 재판에서는 사건의 진행 경위나 정황보다는 ‘결과’에 무게를 두고 판단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피해 금액이 크거나, 피해자가 여러 명에 이르는 사건에서는 사건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 사기죄가 인정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법은 원칙이지만, 그 원칙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결국 해석과 판단의 문제다. 사기죄는 그런 법적 판단의 모호함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범죄 중 하나다.

 

사기 사건은 말과 행동, 상황과 관계, 가능성과 의도가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입체적인 해석과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