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저는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통장 전달책으로 긴급체포되어 경찰 조사와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상태이고, 이번 주에 사건이 검찰에 송치될 예정입니다.
제 친한 친구가 올해 초 캄보디아에 여행을 다녀온 후 저희 집에 놀러왔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친구가 “캄보디아에서 코인·선물 투자 관련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자금을 세탁할 계좌가 필요하다”며 제 통장을 가지고 함께 캄보디아로 가자고 권유하더군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돈을 많이 준다고도 했고, “혹시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물어보니 “절대 아니다”라고 하길래 저는 2025년 5월경 친구와 함께 캄보디아에 갔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서 3주 동안 숙소에 감금되다시피 했고,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했습니다. 3주 후 귀국은 했지만 당초 약속했던 돈도 받지 못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감금되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보이스피싱인지 모르고 통장만 전달하러 간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향후 검찰이나 재판 단계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담장 너머 우체부’ 법무법인 JK 이완석 변호사입니다.
캄보디아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어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앞두고 있는 어수선한 시국입니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범죄에 가담하게 된 사실을 인지했거나, 범행을 중단하고 귀국을 원했지만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 폭행, 협박, 고문 등을 당해 강요된 행위로 어쩔 수 없이 범행을 계속하게 된 사연들이 많은데요.
이와 같은 사건의 경우,
▲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는지 여부, 즉 사기의 고의가 문제 될 것이고, ▲ 아울러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로서 책임이 없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될 것입니다.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에서 ‘미필적 고의’ 문제는 이미 여러 번 언급한 주제라 간략히만 말씀드리고, 오늘은 ‘강요된 행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다음,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보이스피싱 가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주장에 관하여
총책이나 팀장급을 제외하고는, 제가 수행한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보이스피싱 조직인지 몰랐다”, “단순히 아르바이트라고 알고 있었다”, “불법인 줄은 알았지만 보이스피싱 사기였다면 절대 안 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판례는 피고인이 고의를 부인하는 경우 고의를 입증할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습니다.
“고의는 내심적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 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8도4228 판결 등 참조)”.
결국 사람의 내심의 의사, 즉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정황 등 간접사실들로 고의를 미루어 짐작하겠다는 말인데요.
예컨대 20대 초반으로 학력이나 사회 경험이 일천한 피고인이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보다 상당히 높은 급여를 주겠다”는 말을 믿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출국하였다면 적어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고 불법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막연히 ‘불법’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피고인이 특정한 범죄 즉 ‘사기’를 인식하고 범행에 나아갔다는 사실이 입증되지는 않지만, 실무상 이를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유죄가 선고되고 있습니다.
형사처벌은 개개인의 범죄에 대한 개별책임이고 고의를 포함한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다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마땅하나,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의 경우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삼아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중대한 범죄로서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큰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건의 경우 출국 이전에 자금세탁 용도로 본인 계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범행에 나아간 것이어서, 법원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무리한 주장은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형법 제12조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여 무죄라는 주장에 관하여
이미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것처럼, 캄보디아 사건의 경우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범죄에 가담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이 폭행·협박 등으로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경우에는 생명,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법행위(범죄에 가담하면 안 된다)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경우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강요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형법 제12조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적법행위를 기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강요된 행위에 관하여 판례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법원은 “형법 제12조에서 말하는 강요된 행위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 등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은 심리적 의미에 있어서 육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절대적으로 하지 아니할 수 없게 하는 경우와 윤리적 의미에 있어서 강압된 경우를 말하고, 협박이란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달리 막을 방법이 없는 협박을 말하며, 강요라 함은 피강요자의 자유스런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특정한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7. 6. 29. 선고 2007도3306 판결).
위 기준에 따라 하급심 판례에서 강요된 행위에 대해 판단한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① 강요된 행위를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한 판례
전세자금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임대차계약서와 계약금 납입 영수증을 제출하면 형식적 심사를 거쳐 전세 보증금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대출 실행 후 임대차계약을 취소하더라도 카카오뱅크에 대출금을 직접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허위 임차인을 모집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 후 즉시 임대차계약을 파기하고 임대인으로부터 대출금을 반환받는 방법으로 이를 편취한 사건에서 폭력단체 조직원들이 피고인을 강제로 차에 태워 모텔에 감금한 뒤 “내 말대로 안 하면 진짜 죽여버린다”, “협조 안 하면 인생 힘들어진다”고 협박하여 피고인을 허위 임차인으로 내세워 전세 보증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오래전부터 괴롭힘을 당해 심리적으로 쉽게 저항하기 힘든 상태에서 다수의 폭력범죄단체 조직원들의 위세와 피고인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명시적 협박을 받아 약 9일 동안 계속 감금된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하게 되었으므로, 당시 피고인에게 이 사건 범행에 가담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형법 제12조의 책임조각사유가 있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인천지방법원 2025. 5. 14. 선고 2024고단3128, 2024고단3492, 2024고단6872 판결).
② 강요된 행위(적법행위의 기대가능성 없음)를 부정하여 유죄를 인정한 판례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상담원
캄보디아에 도착하여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긴 채 보이스피싱 상담원으로 가담한 사건에서, “피고인은 캄보디아로 출국할 당시 자신이 캄보디아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거나 범죄에 가담하게 될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인 의사로 출국하였다.
캄보디아에 도착한 지 며칠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고, 피고인과 함께 캄보디아로 출국한 자도 캄보디아에 도착한 이후 며칠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던 것으로 보이는바,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귀국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피고인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무실에 있었던 피고인 A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한국에 있는 모친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던 점, ▲ 범행을 위해 지급된 컴퓨터 또는 다른 사람들이 소지하고 있는 휴대전화 등을 통해 피해 사실을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 그럼에도 피고인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고, 외부에 연락할 방법 등을 논의한 사실조차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 피고인이 귀국 후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고 오히려 같은 해 다시 캄보디아로 출국하여 체류하였던 점 등에 비추어 사무실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피고인의 변소는 믿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춘천지방법원 2025. 7. 10. 선고 2025고합15 판결).
▶ 중국 보이스피싱 상담원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폭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하였다고 주장한 사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상위 조직원들이 위 범행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피고인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말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은 인정되나
▲ 피고인이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중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보이는 점, ▲ 피고인을 포함한 상담원들이 외부와의 출입이 가능하였고 국내의 가족들과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 피고인이 범행 매뉴얼을 숙지하고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여 수회에 걸쳐 상담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한 점 등에 비추어 앞서 인정한 가해 위협 등의 사실만으로는 피고인의 범행이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10. 11. 선고 2018고단4009, 2018고단4337 판결).
▶ ‘음란행위 영상 유포’ 협박받아 보이스피싱 국내 현금 수거책으로 가담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현금 수거책으로 범행에 가담하면 피고인이 음란행위를 하는 영상을 삭제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범행에 가담한 사건에서 1심은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은 1심을 파기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요구에 따라 범죄행위에 가담하여 또 다른 범죄 피해를 발생하게 하는 것이 영상을 삭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거나 실효적인 방법이었다고 볼 수도 없는 점,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으로 약 60만원 상당의 대가를 취득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부산지방법원 2022. 11. 10. 선고 2022노1623 판결).
▶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받아 보이스피싱 가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을 당하여 범행에 가담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요구를 거부하고 경찰에 그 내용을 신고하지 않은 채 범행 대가를 수수하며 범행에 나아간 이상, 피고인의 범행이 가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달리 막을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 9. 16. 선고 2020고단2248 판결).
3. 결론
귀하의 경우 본인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고도 자진 출국하여 범행에 가담한 이상, 기존 판례의 태도에 비추어 본다면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울러 단순히 감금되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 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보다 구체적인 폭행 또는 협박에 관하여 소명이 필요합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캄보디아 범죄단체의 고문, 폭행, 협박, 납치, 감금 등이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만약 무죄를 주장하신다면 무죄 승소율이 높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사건을 진행하는 것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