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자동차 딜러로 일하던 A는 어느 날 고객으로 네 명의 남자를 만났다. 평범한 고객으로 다가온 그들은 차량 리스와 구입을 진행하며 A와 친분을 쌓았다. 그들의 젠틀한 태도와 현금으로 두둑한 지갑, 확장되어 가는 사무실 규모는 A에게 그들이 성공한 사업가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B는 가장 호감형의 인물로 A에게 종종 상품권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더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하게 된다. 꽤 괜찮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B는 자신이 하는 상품권 거래는 합법적인 사업이며, 단지 통장을 빌려주는 것뿐이라며 A를 안심시켰다. 보이스 피싱을 의심하는 A에게 B는 단순한 편법일 뿐, 중국의 큰손들이 들어와 상품권을 대량으로 사는 거래라고 답했다. 그렇게 A는 B의 말만 믿고 상품권 거래에 발을 들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통장 관리와 수표인출 업무를 맡았다. B는 A에게 인출 할 수표의 권면액과 장수를 정확히 지시했고, A는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A는 점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상품권 거래를 의뢰하는 회사들의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거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A는 B가 대신해 상품권 거래를 해준다고 하여
정당방위.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다.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접하는 표현 중 하나로, 억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거 정당방위 아니야?”라며 쉽게 말하곤 한다. 이처럼 정당방위라는 단어는 국민 정서에 널리 퍼져있고, 언론에서도 종종 다뤄질 만큼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이 단어를 법률 용어로 쓰려고 할 때는 고민이 생긴다. 정당방위는 부당한 법익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는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제도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 ‘상당한 이유’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흔히 발생하는 폭행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평범한 직장인 A 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헬스장을 찾았다. 평소와 같은 날이었지만 그날 A 씨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A 씨가 헬스 기구를 이용하려는 중 B 씨와 마주쳤고 서로 누가 먼저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약간의 다툼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B 씨는 갑자기 A 씨의 부모를 언급하며 시비를 걸었다. A 씨는 키도 크지 않고 체격이 마른 편이었고,
20년 지기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박 변호사, 큰일이다. 나 음주 운전 걸렸어. 나 좀 살려줘” 전화를 걸어온 친구는 공무원 신분이라 음주 운전만으로도 신분에 큰 타격을 입고, 잘못하면 파면이나 해임이 될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음주 운전 사건은 정해진 증거, 즉 음주 측정치 또는 혈액검사 결과 등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명확히 나오기 때문에 증거법상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측정이 안 된 경우라면 며칠 후 경찰에 출석해 혈액검사를 받게 되고 그때 혈중알코올농도가 측정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면 다툼이 생기긴 하지만, 단속할 때 음주 측정을 거부하기 위해 차를 버리고 도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뿐 아니라 누구든 그런 행동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에 운전 후(정차 후) 186분이 지나고 음주 측정을 해 위반 수치가 나왔는데 무죄 선고가 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정차 후 술을 사서 먹었다는 변소와 정차 후 술을 샀다는 것을 봤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이 보강되어서였다. 전화 온 친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횡단보도에서 잠시 졸았는데 그때 단속이 되었다고 한다. 수사 결과 22시 10분까지 술을 마시고 출발하여 운행하다가 22시 30분에 경찰이 출동,
요즘 성 관련 사건을 보면, 무엇이 진심인지 모르겠다. 정말 사랑한 것인지, 일방적인 것인지, 상대방이 의사를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원한 것인지. 너무도 많은 다양한 사건이 있고, 그 사건마다 실체와 내용, 결론은 달랐다. 한 마디로 ‘케.바.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나를 찾아온 의뢰인의 직업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사건은 간단했다. “원장님이 프로포폴까지 놓고 강제로 나를 범했어요”가 신고 내용으로 전형적인 강간, 강제추행으로 피고소 당한 사건이었다. 성형외과 원장이었던 그는 좁은 진료실이 내 세상의 전부이고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세상이 무엇이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저 출퇴근만 열심히 하는 40대 초반의 의사였다. 그의 사정을 들어보니 이러했다. 의뢰인의 병원에 상담실장으로 일하는 여성이 있었는데, 여성이 먼저 유혹해 왔고 사귀자고 한 것도, 프로포폴을 놔 달라고 조른 것도 여성이 먼저였다고 했다. 의뢰인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하면서도 사랑한다고 하고, 좀 무섭긴 했지만 의뢰인 역시 그 여성을 사랑했다고 했다. 그의 말은 절실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눌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말
변호사 경력이 길지 않았던 때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조선족 아내 부부가 함께 구속되었다. 혐의는 보이스피싱. 두 사람을 처음 접견하던 날, 남편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변호사님, 보이스피싱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그냥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을 뿐이에요.” 아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오열을 할 뿐이었다. 아내가 환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환전소에서 사용하던 통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었고, 입금된 돈을 중국의 다른 통장으로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보낸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된 것으로 보였다. 겉보기에 부부의 사연은 영락없는 보이스피싱 범행이었다.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은 점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 피해자를 속이는 사람,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사람, 그리고 피해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는 사람까지 모두 각기 따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특히 인출책이나 송금책의 경우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본인이 정확히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형사 소송에서 범행의 고의는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이 원
사실 법, 특히 형법에서는 ‘진심’이 중요하지 않 다. 하지만 ‘고의’는 중요하다. 두 개념은 어떻게 다를까? 변호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의뢰인들이 “왜 재판에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 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느냐 는 것이다. 사기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하는 핵 심은 “기망 행위를 했는가”이다. 많은 의뢰인 들은 “피해를 줄 의도는 없었다”, “나도 사업이 성공할 줄 알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의뢰인들의 진심을 믿는다. 하지만 법원 은 ‘진심’이 아닌 ‘고의’를 본다. 중요한 것은 그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행동했느냐이 다. 그런데 고의란 무엇일까. 상대방에게 한 말 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고, 계획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은 내심으로 이를 인식하 고 용인했다면 사기죄 의 유죄를 선고한다. 변호사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면, 사 업을 하는 사람 중 실패를 목표로 시작하는 사 람은 없다. 투자자들, 즉 나중에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도 100% 성공을 확신하고 돈을 맡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은 정말 투 자자들에게 100% 성공할 것이라 믿게 했던 것 일까? 이 지점에서 의심스러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