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과 제 생각과 다짐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음주 운전으로 여러 번 적발된 끝에 결국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재수가 없었네" 하며 벌금을 내고는, "이제 진짜 조심해야지" 다짐해 놓고도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오늘 하루쯤이야", "집이 가까운데 뭐"라는 안일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늘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오만한 생각은 결국 철창행이었습니다. 선고 결과를 듣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그보다 저를 더 두렵고 부끄럽게 만든 건 피해자와 그 가족분들의 눈빛이었습니다. 나의 잘못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얼마나 거대한 불행이 닥쳤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 눈빛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후,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수없이 후회했습니다. 그깟 술 몇 잔의 쾌락이 그분들의 인생을 이토록 어둡게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술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이었다는 것을요. 스트레스받는다고 마시고, 기분 좋다고 마시고, 심심하다고 마시고, 저는 술을 핑계 삼아 아무 죄 없는 분들의 일상을 파괴했고 제 자신의
<더 시사법률>로 써보는 오늘의 일기 향정신성 약품 투약으로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6개월. 여전히 매일이 쉽지 않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약물에 찌들어 있던 몸이 비명을 지르듯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금단 증상 때문에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교도관님들 앞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는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수치스러웠지만 내 몸은 이미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 달쯤 지나 떨림도 멈추고 땀도 나지 않자 내 안에서 오만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생각보다 참을 만하네. 이 쉬운 걸 왜 밖에서는 못해서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같은 방을 쓰던 형이 내게 서늘한 경고를 던졌다. "야, 네 눈빛 보면 다 티 나. 여기서 나가면 다 잊고 알아서 잘 끊을 수 있을 것 같지? 절대 아니야."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형은 나와 같은 죄로 벌써 세 번째 들어온 사람이었다. 교도소 내 마약 재활 프로그램도 처음엔 그저 시간이나 때우려 참석했다. 그런데 몇 번 가다 보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핑계가 하나같이 나와 똑같았다. '우연히', '호기심에', '의도치 않게'. 나
두 달에 한 번 그 먼 파주에서 이곳 강릉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돌봄 접견을 와주는 당신께 고맙고 또 한없이 미안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잘못 때문에 당신이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 입학식, 그리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홀로 묵묵히 이겨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사진을 보내주던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많이 무너졌어. 오히려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며 못난 내 걱정부터 먼저 해주는 당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그 웃음 속에 숨겨진 고통과 막막함을 알면서도 내 잘못으로 인해 갇혀 있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미안해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던 내 자신이 참 밉고 부끄럽네.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늘 "괜찮아"라며 내 마음부터 다독여주는 당신에게 평생 갚아도 모자랄 빚을 지고 있어. 내가 지은 죄로 나와 같이 짐을 짊어진 우리 가족 내가 평생 묵묵히 다 갚으며 살게.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 딸, 사랑해.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2일 국회 집무실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이번 전달은 과로사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회의장이 역할을 한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지난 2월 쿠팡과 과로사 대책위 간 갈등이 원만히 해소되는 과정에서 우 의장이 중재와 문제 해결에 기여한 점을 평가하는 취지로 진행됐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우 의장은 사안 해결을 위해 과로로 숨진 노동자들의 유가족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우 의장은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서 노동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와 청문회 등을 통해 노동 환경 개선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관심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과도한 업무 부담 없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과 노동자가 상호 신뢰 속에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이며 노사 간 협력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박석운 과로사 대책위 공동대표는 우 의장이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 유족들과 직접 소통한 점에 감사의 뜻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싸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신청 시기와 절차, 배심원 평결의 효력 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혼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이 공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이 기간을 넘기면 원칙적으로 참여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공판준비기일이 종료되거나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린 이후에는 일반 재판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전환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첫 재판기일에 출석하지 못한 경우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단순 불출석을 이유로 이후 국민참여재판으로 변경하는 것은 어렵고, 통상 기일 변경이나 연기 문제로 처리된다. 재판 진행 방식도 일반 재판과 차이가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하루에 심리를 마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사건이 복잡하거나 심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음 기일로 이어지는 속행이 가능하다. 변론이 종결된 뒤 별도의 선고기일을 지정해 판결을 선고하는 것도 허용된다. 배심원 평결의 효력은 권고적 수준에 그친다. 배심원은 유무죄와 양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지만, 법원은 이에 구속되지 않는다. 법원은 평결과 다른 결론을
좁은 창틀 사이로 또 한 번 무심한 계절이 흘러갑니다. 담장 너머 피고 지는 꽃잎들을 보며 제가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그토록 쥐려 살았을까 숨 가쁘게 쫓아가던 신기루들은 결국 이 작은 벽을 넘지 못하고 바람결에 모두 흩어져 버렸고 어둡고 고요해지는 밤이 오면 어리석고 가볍던 발걸음이 누군가의 평온했던 마당에 얼마나 시리고 아픈 발자국을 남겼을지 가슴이 먹먹해져 오래도록 뒤척입니다. 내리는 빗물에 얼룩이 씻겨가듯 저에게 주어진 이 멈춰진 시간 속에 모나고 가시 돋쳤던 마음들을 조용히 그리고 둥글게 닦아내어 언젠가 다시 벽 너머 바람을 마주하는 날에 더 이상 누구의 일상도 흔들지 않는 그저 소리 없이 따뜻한 볕에 달궈진 묵묵한 돌로 서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난생처음 구속되어 독방에 격리되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그 좁은 방에서 저는 제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겁한 생각마저 했습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괴로운 건 당연하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정작 닥쳐온 고통을 책임지기 싫어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도피처를 찾았었습니다. 부러지기 쉬운 플라스틱 옷걸이봉과 아무것도 걸 수 없는 화장실 문고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이죠. 그러다 무심코 열어본 수납장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컵라면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낡은 쪽지가 있었습니다. '정신없고 입맛도 없으실 텐데 그래도 이거라도 꼭 챙겨 드세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남겨둔 쪽지를 보고 저는 한참 동안 라면과 쪽지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처음엔 이 삭막한 곳에 이런 일이 있나 싶어 놀랐지만 이내 제 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바깥세상에서 내 이기심으로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짓밟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는데 정작 가해자인 나는 이 차가운 감옥 안에서조차 누군가의 다정함에 기대어 위로를 받고 있구나.' 이름 모를 이가 베푼 그
이곳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보고 있으면, 바깥 시간은 참 부지런히도 흐르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그저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매일 밤 좁은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안의 부끄러운 민낯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저의 이기적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 하나쯤이야', '이번 한 번만'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가벼운 생각들이 모여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만들었습니다. 저로 인해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빼앗기고,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을 피해자분들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숨이 막혀옵니다. 어떤 말로 사죄를 드려도 그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겠지만 그분들이 흘리신 눈물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묵묵히 저를 기다려주는 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특별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던 평범한 하
안녕하세요. 횡령죄로 이곳에 들어온 지도 꽤 되었습니다. 처음 철문이 닫히던 날,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운이 나빴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용 생활을 하다 보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라고 말하는 사람, 나오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사람. 그 모습을 보면서 불편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게 저랑 똑같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남의 돈에 손을 댔습니다. 처음엔 잠깐 빌리는 거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는 좀 더 쉬워졌고, 나중엔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준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도 멈추질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저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서 시간이 많으니까 싫어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에 천장 보고 있으면 제가 망가뜨린 것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돈이 아닙니다. 저를 믿어줬던 사람들의 마음, 그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쉽게 못 믿게 됐을 거라는 것, 그게 제일 무겁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도 처음엔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Q. 가석방 관련해서 문의드립니다. 교정본부에서 가석방은 헌재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데요, 가석방 업무지침에는 합산이라 되어 있는데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1형이 3년을 받고 2형으로 2년을 받았을 때, 헌재 결정에 따라 가석방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Q. 저는 각형을 받아 살고 있고 현재 2년 6개월 중 2년을 살았습니다. 이송 오기 전 소에서 교도관님들이 형 변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주변을 보면 대부분이 각형입니다. 다시 한 번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A. 2025년 현재, 가석방 심사 기준과 관련해 교정본부는 헌법재판소의 1993헌마12 결정을 근거로 “각 형기별로 1/3 이상을 초과 복역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복수의 형이 각각 다른 판결로 확정된 경우, 전체 형기를 합산해 계산하지 않고 각 형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각각 형기의 1/3을 초과 복역했는지를 따지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질문자처럼 사건 A에서 징역 3년, 사건 B에서 징역 2년을 각각 다른 재판에서 선고받은 경우,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전체 형기의 1/3인 1년 8개월 이상을 복역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