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다.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우리 어머니랑 외삼촌이 보험 사기로 고소당했어요.” “보험 사기요? 사기 금액이 얼만데요?” “그게… 두 분 합쳐서 10억 원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네? 10억이요?”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인의 어머니와 외삼촌은 여러 보험에 가입하여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 보험사로부터 보험 사기로 고소를 당한 듯했다. 아무래도 금액이 10억 원에 달하다 보니 보험사 입장에서도 강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지인에게 쉽지 않은 사건으로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두 분이 너무 억울해하세요. 꼭 좀 도와주세요.” 며칠 후, 지인의 어머니와 외삼촌을 직접 만났다. 지인의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며 지금까지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2007년 8월경부터 상해보험 포함 총 13개사 보험에 가입한 후 다음 해부터 2016년까지 총 2,119일 동안 43개의 병원에 입원, 11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약 8억 원을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고, 지인의 외삼촌은 역시 2007년 8월경 8개사 보험에 가입해 다음 해부
형사 J와 수사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A 씨의 신원을 확인하며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A 씨가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던 것이다. 수사팀은 급히 A 씨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휴대폰 신호를 확인하려 했지만 3월 15일 이후 휴대폰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 그러나 3월 17일 오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사팀이 인천공항을 방문했던 그다음 날이었다. 꺼져 있던 A 씨의 휴대폰 전원이 잠깐 켜진 것이었다. 형사 J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휴대폰 위치를 즉각 추적해보니 신호는 수원시 광교의 한 기지국에서 잡혔다. A 씨가 그곳에 있다는 강력한 단서가 확보된 것이다.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과 형사팀은 물론, 지방청 광역수사대까지 현장으로 출동했다. 광교 지역의 기지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수사팀은 각 구역을 나눠 꼼꼼하게 수색했다. 얼마가 지난 후, 형사1팀이 광교의 한 공원 근처에서 수상한 인물을 발견했다.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덩치 큰 남자였다. 형사들은 곧 그의 정체를 직감했다. 남자의 체격과 모습은 용의자로 특정된 A 씨와 일치했다. 형사1팀은 주변에 은밀히 잠복하여 그를 주시했다. 체포할 완벽한 타이밍을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 형사 J는 수많은 강력사건을 해결해오며 다양한 범인들과 마주했다. 그중에서도 2019년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형사 생활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사건의 중심에는 주식 투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B 씨와 그의 부모, 그리고 범인 A 씨(남성, 30대)가 있었다. 당시 B 씨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된 자신의 화려한 삶을 과시했지만, 동시에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B 씨가 구속으로 집을 비운 사이, 범인 A 씨는 B 씨의 부모를 찾아가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 사건은 2019년 3월 16일, 부모와의 연락에 의구심을 품은 B 씨의 동생 C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형사 J를 포함한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이 현장에 즉시 투입되었고 단 22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하기에 이른다.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시작은 2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C 씨는 당시 어머니로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아버지의 친구가 돌아가셔서 부부가 급히 일본에 가봐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화 통화는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귀국이 늦어진다”라며 메
수사관과 피의자가 감정 싸움을 벌이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사관과 피의자의 갈등은 대출 명의자의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로 시작됐다. 대출금을 갚지 않으려는 신고로 C가 긴급 체포되었다. C는 주범 D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으며, 대출 명의자와 직접 접촉한 인물이었다. 보통 공범들은 서로의 신원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A는 합법적인 대부중개업체를 운영했기에 C는 A의 신원을 알고 있었다. C는 체포 후 “D가 주범이며 그의 인적 사항은 모른다”고 진술했으나, B 수사관은 A를 주범으로 단정하고 압박했다. 결국 C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A를 주범이라고 허위 자백했다. C는 체포된 지 24시간 만에 풀려난 뒤 A에게 “D의 인적사항을 모른다”면서 “수사관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A를 주범으로 지목했다”고 털어놓았다. A는 일부 가담 사실을 인정했지만,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억울했다. 그는 대화를 녹음하며 결백을 입증할 희망을 가졌으나 사건은 더 복잡해졌다. 며칠 뒤, B 수사관은 보강 수사를 이유로 C의 출석을 요구했다. A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C와 동행하며 “D가 주범임을 솔직히 말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행동은 B 수사관에게 A가 사건을 조작하려 한
“6사 응급환자 발생! 의료과로 이동 중!” 다급한 무전 소리에 나는 한달음에 의료과로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수용자 L이 피투성이가 된 발뒤꿈치를 붙잡고 누워있었다. 아킬레스건을 끊으려고 한 모양이다. 수용자 L은 교도소 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그는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했다. 젊을 땐 정보공개 청구와 인권위 진정으로 직원들과 부딪혔고,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해를 서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50대가 되자 더 이상 그의 행동에 반응해 주는 이도 드물었다. 특히나 L이 수용되어 있는 교도소에 사형수와 무기수, 거물급 수용자들이 많아 그의 존재감은 점점 묻혀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벌인 소동도 관심을 끌어보려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타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 친구가 내게 그의 과거사를 전달하며 신경 좀 써달라 부탁해왔다. 교도소에서 나이가 들어버린 L은 가족도 없고 건강도 나빠져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파손된 안경으로 인해 가까이하던 신문과 성경조차 읽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답답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수용자 L이 결국 선택한 건 자해였다. 그가 선택한 자해라는 방식은 오히려 모든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앞으로도 긴 시간을
2017년 6월 초순의 한 밤, 광주 북부경찰서 강력계 형사 S는 야간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두꺼운 사건 파일에 눈을 박고 있는데 살인 사건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8층 아파트, 사체 상태가 이상합니다” 지구대 경찰이 전해 온 한 마디에 형사 S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운전대부터 잡았다. 형사 S는 운전대를 단단히 움켜쥐고 사건 현장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현장은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였다. 현장에 도착한 형사 S는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과 함께 사건이 벌어진 8층의 한 집으로 올라갔다. 집은 평범하였고 대체로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형사 S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진입했다. 사체는 아파트 베란다 끝에 위치한 작은 창고에서 발견됐다. 피해자는 80대의 여성 A 씨였다. A 씨의 신변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 건 그녀의 두 딸 들이었다. 딸들은 평소처럼 A 씨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평소 어머니와 연락을 자주 주고받았던 터라 연락이 닿지 않자 딸들은 모종의 불안감을 느꼈고 결국 큰 딸이 그날 오전 어머니의 집에 방문하기에 이른다. 큰 딸이 어머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은 늘 그렇듯
2018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야기가 세상 떠들썩할 때 이야기다. 상담을 하고 싶다는 한 의뢰인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의뢰인 A씨는 00경찰서 수사관 B의 수사로 이미 한 차례 구속되었던 A씨는 출소한 지 3주 만에, 다시 같은 수사관 B로부터 또 다른 사건으로 소환장을 받았다고 했다. “변호사님, 그 수사관한테는 더 이상 수사를 못 받겠어요. 사건을 제가 등록된 주소지로 이송하거나 수사관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어요.” 처음엔 간단한 행정적인 요청으로 보였다. 사건 이송 신청서나 수사관 교체 요청서를 작성해서 접수하면 될 것 같았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A씨가 연루된 사건은 흔히 “작업 대출”로 불리는 유형의 사건이었다. 이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연결해 서로 맞보증을 서게 한 뒤, 대출금을 받아 나눠 갖고 함께 갚아나가는 구조였다. A씨는 이 과정에서 중개 역할을 하며 두 명의 명의자에게 총 300만 원을 대출받게 하고, 그 대가로 A씨는 30만 원의 중개 수수료를 받았다. 이런 사건의 본질은 대출자가 피해자가 아니라 금융사가 피해자인 사건에 해당하는데 문제는 맞보증을 섰던 명의자 중 한 명이 대출금을 갚지 않
1997년부터 형사 C는 3년 넘게 청와대 내부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장신의 키와 수려한 외모로 청와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당시 인기 많았던 홍콩 영화배우 곽부성과 유덕화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겉보기에 멋져 보이는 VIP 경호 업무엔 항상 극도의 긴장감과 체력 소모가 뒤따랐다. VIP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그는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2001년, 형사 C는 청와대를 떠나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로 자리를 옮겼다. 경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다. 사실 형사라는 직업을 어린 시절 꿈꿨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우연한 기회로 형사가 되었을 뿐인 그였지만 형사가 되어 사건 현장에 출동하고 수사를 진행하며 경호업무와는 다른 일에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0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한 사건이 서울 잠원동 한강변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이었다. 2010년 12월 5일 늦은 밤, 친구와 헤어진 A 씨(남성, 20대 중반)는 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밤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밤이 늦었지만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던 A 씨는 버스비라도 아껴볼까 싶어 집
“변호사님 저희 남편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지인의 소개로 연락했다는 한 아주머니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아주머니의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제 남편이 00시 연꽃단지 조성 지자체 보조금 편취로 검찰에 구속됐어요.” 당시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지자체 보조금을 흔히 ‘눈먼 돈’이라고 부르며 허위 영수증을 첨부해 보조금을 부정하게 타가는 사례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며 대대적인 감사가 있던 때였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가 이미 많이 되어 있었다. 바로 ‘지자체 보조금 편취사건’이었다. 법조계에선 흔히들 이런 사건을 ‘언론 탄 사건’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다양한 언론 채널에서 보도되며 아직 혐의가 입증이 되지 않았고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당사자가 유죄인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개인적으로 업무적인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선임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절실함이 마음에 걸려 일단 남편부터 접견해보기로 했다. 성실하고 순박한 농민으로 보였다. 대체 이 사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저는 연꽃단지
1992년,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했던 생활을 마무리하고 총무과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롭게 담당한 업무는 영치품 업무였다. 영치 업무는 단순한 듯 보이지만 꼼꼼함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업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안과장이 나를 불렀다. “SOFA 수용자를 영치 청소부로 데리고 있을 수 있겠나?” 나는 뜻밖의 제안에 당황해 물었다. “제가 영어도 못 하는데, 미국인 수용자들을 어떻게 데리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이 한국어를 잘하니까 의사소통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지금 SOFA 수용자 10명이 공장에도 출역하지 않고 사동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래서 공장으로 보내려 했는데, 굿리치와 램지라는 두 명이 영치 청소부로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 너도 영치 업무가 많으니 데리고 일해봐.” 그렇게 해서 나는 SOFA 수용자 굿리치와 램지, 그리고 한국인 수용자 한 명을 영치 청소부로 데리고 다니며 일을 하게 되었다. 굿리치와 램지는 시작부터 내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다. 특히 자신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점에 대해선 거침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따졌다. 서로가 낯선 가운데 교도관과 수용자라는 관계도 있어서 처음부터 좋은 팀워크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