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동야근이란 교정시설의 수용동에서 야간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근무를 말합니다. 교정시설은 24시간 내내 감시와 관리가 중단 없이 유지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밤이라고 해서 운영이 느슨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해가 진 이후에 더욱 긴장감이 높아지는데, 각종 돌발 상황이 낮보다 야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주간근무자와 야간근무자 사이에 업무 인수인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시점부터 사동 전체의 운영 책임은 야간근무자에게 넘어가며, 주간근무자는 퇴근하게 됩니다. 밤이 깊어지면 외부 출입이 거의 차단되고 겉보기에는 고요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업무의 강도는 주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원 확인, 이상 징후 감지, 정기 순찰 등 기본적인 업무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야간근무에서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감시가 느슨해지는 틈을 이용해 수용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유와 관계없이, 수용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교정시설 운영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원칙입니다. 이 때문에 야간근무자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또 하나의 현실적인 부담
좁은 창틀 사이로 또 한 번 무심한 계절이 흘러갑니다. 담장 너머 피고 지는 꽃잎들을 보며 제가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그토록 쥐려 살았을까 숨 가쁘게 쫓아가던 신기루들은 결국 이 작은 벽을 넘지 못하고 바람결에 모두 흩어져 버렸고 어둡고 고요해지는 밤이 오면 어리석고 가볍던 발걸음이 누군가의 평온했던 마당에 얼마나 시리고 아픈 발자국을 남겼을지 가슴이 먹먹해져 오래도록 뒤척입니다. 내리는 빗물에 얼룩이 씻겨가듯 저에게 주어진 이 멈춰진 시간 속에 모나고 가시 돋쳤던 마음들을 조용히 그리고 둥글게 닦아내어 언젠가 다시 벽 너머 바람을 마주하는 날에 더 이상 누구의 일상도 흔들지 않는 그저 소리 없이 따뜻한 볕에 달궈진 묵묵한 돌로 서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난생처음 구속되어 독방에 격리되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그 좁은 방에서 저는 제 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겁한 생각마저 했습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괴로운 건 당연하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정작 닥쳐온 고통을 책임지기 싫어 '차라리 이대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도피처를 찾았었습니다. 부러지기 쉬운 플라스틱 옷걸이봉과 아무것도 걸 수 없는 화장실 문고리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이죠. 그러다 무심코 열어본 수납장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컵라면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낡은 쪽지가 있었습니다. '정신없고 입맛도 없으실 텐데 그래도 이거라도 꼭 챙겨 드세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남겨둔 쪽지를 보고 저는 한참 동안 라면과 쪽지를 만지작거렸습니다. 처음엔 이 삭막한 곳에 이런 일이 있나 싶어 놀랐지만 이내 제 안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바깥세상에서 내 이기심으로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을 짓밟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는데 정작 가해자인 나는 이 차가운 감옥 안에서조차 누군가의 다정함에 기대어 위로를 받고 있구나.' 이름 모를 이가 베푼 그
이곳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보고 있으면, 바깥 시간은 참 부지런히도 흐르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그저 답답하고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매일 밤 좁은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안의 부끄러운 민낯과 마주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저의 이기적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 하나쯤이야', '이번 한 번만'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가벼운 생각들이 모여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만들었습니다. 저로 인해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빼앗기고,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겪으셨을 피해자분들을 생각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숨이 막혀옵니다. 어떤 말로 사죄를 드려도 그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겠지만 그분들이 흘리신 눈물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묵묵히 저를 기다려주는 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특별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던 평범한 하
안녕하세요. 횡령죄로 이곳에 들어온 지도 꽤 되었습니다. 처음 철문이 닫히던 날,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운이 나빴던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용 생활을 하다 보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라고 말하는 사람, 나오면 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사람. 그 모습을 보면서 불편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게 저랑 똑같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남의 돈에 손을 댔습니다. 처음엔 잠깐 빌리는 거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는 좀 더 쉬워졌고, 나중엔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준 사람들 얼굴을 보면서도 멈추질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이미 저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 와서 시간이 많으니까 싫어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에 천장 보고 있으면 제가 망가뜨린 것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돈이 아닙니다. 저를 믿어줬던 사람들의 마음, 그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쉽게 못 믿게 됐을 거라는 것, 그게 제일 무겁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도 처음엔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를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교정시설의 현장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동근무자는 단순한 관리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방"이나 "빵"이라고 부르는 공간의 정식 명칭인 수용거실에서 수용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되며, 특히 미결수의 경우 거의 종일 이곳에서 생활합니다. 거실 구조는 시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 형태는 일관성 있게 유지됩니다.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과 설비가 갖춰져 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 한 층에 여러 세대가 있는 것처럼, 하나의 구역 안에 거실들이 일렬로 배치된 사동(수용동)을 형성합니다. 사동 하나에는 최소 10개 정도에서 수십 개에 이르는 거실이 있으며, 전체 거주 인원은 대략 50명에서 150명 수준입니다. 사동근무자는 이 전체 구역을 책임지고 관리합니다. 흔히 문을 여닫는 것만이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전체 업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인 책임은 거실 내 인원의 이동을 통제하고 출입을 관리하는 것이며, 누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비정상적인 상황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업무 영역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갈등이 발생하면 경찰처럼 즉시 개입
북녘 땅을 가로질러 거침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의 찬 기운이 유난하게 시려 오는 담장 안의 이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반복되는 하루의 시작 말없이 머문다 길게 숨을 고르고 지나온 날을 돌아보며 고요히 마음을 눌러 두고 이 겨울을 안아 본다 지난날의 어긋난 날 후회하며 반성하며 오랫동안 내 맘밭에 자리 잡은 쓴 뿌리를 천천히 마주해 본다 작은 씨앗 흩어 뿌려 다가올 봄을 위해 조용히 기다려 본다
겨울의 끝자락,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문득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라 지금 있는 이곳에서 지난날을 후회하며 시를 적어 보냅니다.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문득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본다. 스쳐 간 순간들은 하얀 눈꽃 사이로 마음속에 스며드는 듯하다. 미처 돌아보지 못한 순간들이 이제야 천천히 떠오른다. 눈이 오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길어져 하얀 눈꽃을 보며 끄적여 본다. 말하지 못한 순간들을 흩날리는 눈에 실어 조용히 되새겨 본다.
존경하는 법무부 장관님, 그리고 교정본부장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26년째 수용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무기수입니다. 지난 오랜 세월 제가 지은 무거운 죄악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남은 삶은 오직 참회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습니다. 중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이곳에 왔지만 스스로에게 벌을 주어 죗값을 치르기 위해 검정고시 합격, 방송통신대 재학, 수십 개의 자격증 취득 등 쉬지 않고 저 자신을 채찍질해 왔습니다. 감사하게도 법무부의 도움으로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간의 시간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내려 노력한 결과 7년 전부터는 S1·R1 등급을 유지하며 단 한 번의 징계 없이 수형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수라는 원죄로 인한 엄중관리대상자 분류 하나만으로 모든 처우 심사에서 자동 제외되는 굳건한 벽 앞에서 때로는 깊은 막막함을 느낍니다. 자율사동, 중간처우의 집, 희망센터 등 교정본부에서 시행하시는 훌륭한 제도들이 재범 방지와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엄중관리대상자들에게 보안상, 국민 정서상 엄격한
환한 대낮,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서 홀로 빛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왜 나는 매번 떨어지는 걸까? 이대로 취업 한 번 해보지 못하는 걸까?' 온갖 비관적인 생각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바닥 한가운데 누워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벌컥 엄마는 늘 그렇듯 허락도 구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 왜 또!”라며 이불 안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내 귀만 아팠다. 어둠을 뚫고 방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엄마는 이불을 확 걷었다. “인나라!” 방문 너머 비치는 거실 전등 불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거실로 나가자 검은 비닐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치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내고, 싱크대에 물을 받아 상추와 깻잎을 담그며 말했다. “삼겹살 3만원어치 사 왔다! 먹자!” 심사가 뒤틀릴 대로 뒤틀린 나는 잔뜩 신난 듯한 엄마가 아니꼽게 보였다. 명치가 아플 정도로 속에 꽉 찬 이 답답함을 불효막심하게도 엄마에게 풀 심산이었다. 그때, 저절로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가 갑자기 허공에 뒷발차기를 하는 게 아닌가? 육중한 몸매의 엄마가 짧은 다리를 뒤로 뻗어 두어 번 휙휙 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