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탄원서를 중요하게 여길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유명 정치인에 대해 시민 13만여 명이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고려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기업인의 횡령·배임 사건에서도 임직원들이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음주운전 및 폭행 사건 등에서도 피고인의 가족과 지인들이 탄원서를 통해 형량 감경을 호소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탄원서는 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형사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탄원이란 “사정을 하소연하여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람”을 뜻한다. 법적으로는 특정한 사정을 판사에게 전달하는 문서로, 주로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피해자 측에서도 가해자의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에는 탄원서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형법 제51조에서는 양형 시 고려할 요소로 ‘범인의 환경’(제1호)과 ‘범행 후의 정황’(제4호)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원서는 피고인의 환경적 요소나 범행 이후의 태도를 참작하는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실제 판결문에서도 “피고인의 갱생을 돕겠다는 지인들의 탄원서가 제출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참고자료일 뿐이며, 법적으로 반드시 감형해야 하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탄원서의 효과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는다. 일부 판사들은 탄원서를 거의 참고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일부는 재량권 내에서 고려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비슷한 범죄에서 한 사건에는 탄원서가 제출되었고, 다른 사건에는 없었다면 미묘한 차이를 만들 가능성은 있다.


특히 피해자 측의 탄원서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내용의 탄원서는 양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는 재판부가 이를 양형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서초동의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해자 측에서 내는 탄원서는 꼭 읽어보겠지만, 피고인의 가족들이 제출하는 것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재판을 받는 피고인과 가족, 지인들은 실형을 피하거나 형량을 줄이기 위해 탄원서나 반성문을 작성하는 데 열을 올린다. 판사에게 간절한 마음을 전하려는 이 글들은 하루에도 수십 건씩 법원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써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형식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탄원서와 반성문은 다양한 방식으로 작성된다. 예를 들어, 성경책의 한 구절을 매일 필사해 제출하는 경우, “잘못했습니다”와 “용서해 주세요” 두 문장으로 A4 용지를 가득 채우는 경우, 또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아 수필처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더 쓸 말이 없는 피고인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했고, 화장실에 몇 시에 갔는지”까지 작성하는 사례도 있다. 또한, 가족들은 특정 단체에 집단적으로 탄원서 작성을 부탁하고, 동료 회사 직원 수백 명이 서명해 제출하는 경우도 많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증거자료이기 때문에, 탄원서가 반드시 고려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탄원서나 반성문에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 노력했거나, 공탁금을 납부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에는 재판부가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말 정성스러운 탄원서라면 재판부도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꼼꼼히 읽어본다”고 덧붙였다.


실제 사례로, 한 피고인의 아내가 전지(全紙)에 손톱만 한 글씨로 탄원서를 빼곡하게 채워 제출한 경우, 재판부가 그 정성과 진정성에 감동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례가 있다.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판사는 “보통 A4 용지 한두 장에 틀에 박힌 이야기들만 써서 제출하는데, 이 피고인의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만났고, 왜 도박에 빠졌는지, 그만두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배경 등을 커다란 전지에 상세하게 설명했다”며 “당시 전지를 큰 책상에 펼쳐놓고 읽으면서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이런 아내가 곁에 있다면 한 번쯤 기회를 더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탄원서는 법적으로 감형을 보장하는 요소가 아니며, 제출한다고 해서 반드시 형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법원처럼 법리 판단이 중심이 되는 재판에서는 탄원서의 효력이 거의 없다. 반면, 1심이나 2심에서는 피고인의 환경이나 반성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될 여지가 존재한다.


결국 탄원서 작성 여부는 사건의 성격과 법적 영향을 고려한 후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