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에 대한 1심 평균 선고형이 199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심 간 형량 격차도 크게 줄어들면서 항소심에서 감형된다는 기존 인식과 달리 1심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최근 ‘양형기준 도입 전후의 양형 판단에 관한 실증적 분석: 살인범죄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1심 평균 11년→17년…25년 새 6년 증가
보고서에 따르면 유기징역형이 선고된 살인범죄 1심 평균 형량은 1998년 11년 6개월에서 2003년 11년 8개월, 2008년 11년 5개월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후 2013년 13년 2개월, 2018년 15년 8개월, 2023년 17년 6개월로 크게 상승했다. 25년 사이 평균 형량이 약 6년 늘어난 셈이다.
항소심 평균 형량 역시 같은 흐름을 보였다. 1998년 9년 4개월이던 평균은 점진적으로 상승해 2023년에는 17년 10개월에 이르렀다.
무기징역을 60년형으로 환산해 통계에 반영할 경우 1심 평균은 1998년 25년 1개월에서 2008년 15년 6개월까지 급격히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상승해 2023년 22년 3개월 수준으로 나타났다.
2심 평균도 같은 기간 19년 11개월(1998년)에서 13년 6개월(2008년)로 줄었다가 2023년 21년 9개월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1990년대 말 경기 악화로 강도살인 사건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했고, 상당수 사건에서 무기징역형이 선고되면서 당시 평균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했다.
“항소심은 이제 사후심”…1·2심 형량 격차 감소
보고서는 2009년 살인범죄 양형기준 도입을 전후로 평균 형량도 비교했다. 양형기준은 범죄 유형별 권고 형량 범위를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실상 중요한 참고 기준으로 작용한다.
양형기준 도입 이전(1998·2003·2008년) 1심과 2심 유기징역형 평균은 각각 11년 6개월, 10년 7개월이었다. 반면 도입 이후(2013·2018·2023년) 평균은 각각 15년 4개월, 14년 11개월로 크게 상승했다.
특히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1심 파기율은 1998년 59.5%에서 2003년 34.6%로 낮아졌고, 이후 원심을 파기하더라도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2013년 이후에는 70% 이상 사건에서 1·2심 선고형이 동일했다.
1·2심 형량 격차도 눈에 띄게 줄었다. 1998년에는 1심 평균 11년 6개월, 2심 9년 4개월로 차이가 컸지만, 2023년에는 각각 17년 6개월, 17년 10개월로 사실상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보고서는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존중하는 기조가 정착됐다”며 “현재 항소심은 1심 양형이 합리적 범위 내에 있는지를 제한적으로 점검하는 사후심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는 형사사법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사형 주장 있었지만…항소심은 무기징역 유지
이 같은 흐름은 실제 판결에서도 확인된다. 2022년 서울고등법원 사건에서 검사는“원심 무기징역은 가볍고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사형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돼야 한다는 법리를 전제로 원심을 존중해 항소를 기각했다. 판결문은 사형 선택에는 객관적·특별한 사정이 분명해야 한다고 설시하며, 무기징역의 사회방위 기능과 가석방 심사의 엄격성도 함께 언급했다(2022노1126 판결(강도살인 등)).
2023년 서울고등법원 역시 검사가 사형을 주장했지만 항소심은 사형 선고 기준의 엄격성을 재확인하며 무기징역을 유지했다(2023노1590, 2023전노92 판결(강도살인·보복살인 등))
항소심이 형량을 상향해 사형을 선고하기보다는, 1심의 무기징역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는 경향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양형기준 도입 이후 검사 구형 대비 실제 선고형 비율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이전에는 1·2심 선고형이 구형 대비 각각 65%, 56% 수준이었으나 이후에는 71%, 68%로 격차가 줄었다.
보고서는 집행유예와 사형은 극단치로 분류해 통계에서 제외했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장기간 학대를 당하다 범행에 이른 경우나 경제적 비관 속 동반자살 시도 등 참작 사유가 있는 사례들이었다.
항소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례는 1998년 4건, 2003년 3건, 2008년과 2023년 각 1건에 불과했다.
특히 사형이 줄면 무기징역이 증가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무기징역 선고 건수 역시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보고서는 “법원이 사형이나 무기징역과 같은 극형을 확대하기보다는 장기 유기징역을 통해 엄중 대응하는 방향으로 양형 기조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안팍 박민규 변호사는 “과거에는 항소심에 가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항소심이 1심 양형을 상당히 존중하는 분위기”라며 “형량을 새로 정하기보다는 합리적 범위 내에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능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체적으로 살인범죄에 대한 처벌 강도는 높아지고 있으나, 사형·무기징역 같은 극형의 확대보다는 장기 유기징역 중심으로 상향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