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군 복무 시절 잠시 파견 갔던 곳에서 성추행을 당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정신과 진료 및 약처방을 받았고 계룡대 근무 지원단 감찰실에서 사건조사도 했었습니다.
대대장은 이곳으로 다시 이동을 명했고, 저는 당시 트라우마로 인해 “거기 가면 자살할 수도 있다”, “다른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동은 거부하였구요 이것이 상관 협박과 항명에 해당하
나요? 제가 이행할 수 없는 지시였는데도 정당한 지시가 맞나요? 방법이 있다면 꼭 도와주세요!
A. 질문자는 파견 근무 중 성추행 피해를 입었고 그 후 피해 장소로 복귀 하라는 상관의 이동 명령을 거부하면서 “거기 가면 자살할 수도 있다”라고 발언하였기에 군형법상 상관협박죄 및 항명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됩니다.
군형법 제48조의 상관협박죄는 상관을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군형법 제44조 항명죄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상관협박죄에 관하여, “거기 가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이 ‘협박’에 해당하는지 즉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한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나, 당사자의 관계(상대방이 상급자인 대대장이며, 엄격한 상명하복의 지휘복종관계에 있는 점), 발언의 전체적인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상관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다른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라는 발언을 고려한다면 성추행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로 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질문자로서는 자신의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다시 같은 장소에 근무할 수 없음을 적극 피력하려는 의도였을 뿐 상관을 협박하려는 고의 또한 없었다고 보입니다.
한편,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36조 제4항은 ‘상관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 및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는 사항 또는 자신의 권한 밖의 사항 등을 명령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복무기본법 제43조는 성추행 피해 사실이 있는 경우 신고 등 적절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도록 정하고 있고, 동법 제45조는 ‘누구든지 신고 등을 이유로 신고자에게 징계 조치 등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 조건상의 차별대우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련 규정들을 고려한다면,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상황에서 보호조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 장소로의 재배치를 명한 상관의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피해자의 심적 안정과 인권보호 측면에서도 부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추행 피해 장소로의 재배치 명령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어서 항명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할수 있습니다.
설령, 상관협박 및 항명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피해가 발생한 장소로의 복귀 명령은 질문자의 정신건강에 심히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므로, 이를 거부하더라도 본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정신과 진료기록을 통해 현재 트라우마 증상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피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형법 제22조의 긴급피난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군 지휘체계의 확립이라는 공익을 고려하더라도 성추행 피해자의 인격과 생명은 이에 버금가는 보호 이익이고, 성추행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같은 피해 장소로 재배치되면 자살 가능성이 있어 다른 곳이면 어디든 가겠다고 말한 절박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없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한편, 판례는 적법 행위를 기대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는데, 설사 상관의 재배치 명령이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성추행 피해와 정신과 진료 이력을 고려한다면 성추행 피해자인 질문자에게 상관의 재배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적법 행위의 기대 가능성이 없으므로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할 수 없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내용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법리적 주장들이고, 구체적 사안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 전문가를 통해 구체적인 사안과 증거를 검토하여 대응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