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들만큼 사고에 민감한 사람들도 있을까. 수용자들이 모두 잠든 때에도 교도관은 깨어 있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사건·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4부제로 바뀌었지만, 3부제로 근무할 때는 새벽 1시를 기점으로 선번, 후번으로 나누어 선번 근무자는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후번 근무자는 새벽 1시부터 오전 6시까지 각각 5시간씩 근무하였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주간 근무에 투입되었다. 그야말로 24시간을 대기하며 혹시라도 근무시간 중에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도관이다. 교도관들의 근무는 단순한 교대 근무가 아니라 책임과 긴장의 연속이자 24시간 대비 태세나 다름없다.
아무래도 교도소라는 근무 환경 자체가 타 직업보다 정신적, 신체적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편이고, 잠을 쫓고 야간 근무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침실에서 나와 교대를 위해 근무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길목엔 감시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근무를 서던 경비 교도대가 수하를 하곤 했다.
그날도 감시대를 지나가는데, 경비 교도대 한 명이 “누구고?”라고 수하를 하였다. 피아식별을 위한 엄숙한 과정이었음에도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원래 약속된 수하는 “누구냐?”였다. 한밤을 꼬박 새우던 경교대 직원이 깜빡 졸다가 고향 사투리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나왔던 것이었다. 그날 밤만큼은 잠시나마 긴장감을 내려놓고 한바탕 웃을 수 있었지만, 모두의 평화로운 밤을 위해 쏟아지는 졸음과 홀로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우리의 사정이 퍽 애달팠다.
매일 밤을 저렇게 웃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있는 교도소라는 곳은 안타깝게도 그런 장소가 아니다. 2000년도에 있던 일로 기억하는데, 당시 사동에서 자살 사고가 일어났었다.
수용자가 발견된 시간은 새벽 1시 10분, 후번 근무자가 근무 교대를 한 후 바로 순찰하였다면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 텐데, 10여 분의 시간이 흐른 후 발견되었던 것이 문제였다. 사건 발생 시간에 따라 책임 여부가 달라질 수 있었고, 이를 두고 선번 근무자와 후번 근무자의 주장이 엇갈렸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징계를 받고 타소로 전출되는 문책성 인사를 받게 되었다. 두 사람의 억울한 사정이 안타까웠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책임을 지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4부제 근무 체제에서 또 한 번의 자살 사고가 발생했다. 3부제 근무 때에는 당무 날 24시간 근무였지만, 4부제로 바뀐 후에는 오후 4시 30분경에 출근해 다음 날 9시까지 근무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날은 내가 주간 당무를 한 후 퇴근하고 밤 10시쯤 나와 같은 근무지의 야간 근무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신입 수용자의 상태가 왠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던 게 마음에 걸려 그 친구 좀 잘 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나와 통화 중이던 야간 근무자가 다시 통화하자면서 급히 전화를 끊는 게 아닌가. 야간 근무자는 그길로 그 수용자가 있는 거실로 뛰어 올라갔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30분쯤 지난 후에도 야간 근무자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보안과로 전화를 걸었다.
교도관들의 직감은 때론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내가 불안하게 여겼던 수용자가 결국 자살을 기도해 그를 병원으로 호송시켰다고 했다. 나의 염려에 곧장 거실로 뛰어 올라갈 만큼 야간 근무자 역시 그 수용자에 대해 모종의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살 사고는 불과 몇 분 만에 생명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무자가 순찰하는 시간을 피해 시도하면 아무리 발 빠른 교도관이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 교도소가 규모가 있는 만큼 근무자의 순찰 주기가 통상적으로 30분 이상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오후, 나는 다시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했다. 전날 사고가 발생한 시간에 근무했던 사동 근무자는 그때까지 퇴근도 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초췌한 얼굴에 간밤의 고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자살 사고로 인해 청에서 조사를 나왔고, 퇴근도 하지 못한 채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잘했든 못했든 사고가 발생하면 청에서 나와 조사를 한다는 이유로 퇴근도 못 했던 때였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교도관이기 때문에 져야만 하는 비애를 새삼 느꼈던 순간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는 과중한 업무와 때론 그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책임감 모두 교도관의 몫이지만, 자살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도 교도관의 몫으로 남는다.
몇 분 사이에 운명이 갈리는 사고다 보니 죄책감도 클 뿐만 아니라,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받는 충격도 오래도록 남는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무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힘든 순간이 온다. 모쪼록 오늘도 교정기관에서 성실히 일하는 교도관들이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