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세차익을 보장한다며 수백억 원대 투자 사기를 벌인 일당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제3-2형사부(황지애 부장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61)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3건의 투자 사기 사건으로 각각 기소돼 1심에서 총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공범 B씨(60)와 C씨(51)에게는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이 선고됐고, 나머지 공범 2명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암호화폐 투자 업체를 운영한 A씨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2년간 투자자들을 상대로 2800여 차례에 걸쳐 190억 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모집책으로 고용한 공범들과 함께 전북 군산의 사무실에서 투자 설명회를 열어 피해자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전 세계 7000여 개 거래소를 연결해 저가 매수·고가 매도로 수익을 낸다”며 “정회원 가입 후 계좌당 1000달러를 투자하면 매일 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이른
안녕하세요. 저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편돌이’입니다. 저는 24년 3월에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25년 2월에 지금 지내는 교도소로 왔습니다. 구속된 후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내가 사고만 안 쳤으면 가족들이랑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는데…. 지난 시간을 떠올리니 눈물이 나네요. 정말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도 못하고, 함께 여행도 못 하고, 멋지게 효도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하고…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못 해드리는 게 너무 아쉬워요. 그리고 너무 후회가 됩니다. 저는 가족을 만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동안 뭘 해드릴까 계획이라도 세우고 싶은데,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재판받던 날 가족들이 왔는데,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에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 자리에서 크게 울고 말았습니다. 제가 가족을 너무 힘들게 만든 것 같아서요. 가족에게 정말로 사죄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나가면 우리 가족 힘들지 않게 해줄 테니 뭐든지 시켜만 달라고 약속드리고 싶어요. 가족들도 이 신문을 보고 있을 거라 믿고 보내봅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한때는 매일같이 했던 말인데요. 교도소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말을 하지 않은 지 오래되다 보니 이 말에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군가 잘 잤기를 바라는 마음, 그건 사랑이더라고요. 물론 사랑에는 여러 모양과 종류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이 뭘까 생각해 보면 ‘건강했으면 좋겠다’인 것 같아요. 바라는 것도 따로 없이 그냥 그 사람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고, 더 자주 웃었으면 좋겠고, 노력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찾아오면 좋겠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맞아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는, 그냥 그런 마음이거든요. 이런 마음이 어쩌면 저 혼자만의 바람 혹은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렇지만 한 가지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품은 사랑이 내 삶이 온전할 때, 내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 더욱 빛날 거라는 사실이에요. 저는 지금의 이런 제 삶이 온전치 못하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미워했어요. 그런 날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가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들 반갑게 신년 축하 인사를 나눴죠.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 뿐인데 뭐 이리 반갑다고들 하는 건지.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1년은 365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365일 7시간 정도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4년에 한 번씩 2월 29일이 있는 윤년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사실 구속되고 처음 맞이하는 연말은 끔찍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한데 모여 한 해를 회상하고 서로의 성과를 칭찬하는 스타들, 새해에 대한 기대를 담아 주고받는 인사말. 나는 제자리에 덩그러니 멈춰 선 채 여기 있는데, 텔레비전 속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이들이 어찌나 미웠던지요. 공연히 그들을 미워하는 자신이 미워 양손 검지로 입술을 쭉 찢어 억지 미소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새해를 맞이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도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잠을 청합니다. 교도소에서의 매일은 참 느리지만 짧습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들의 그리움 속에 내가 남아있을까 생각하며 혼자 새해 인사를 중얼거려 봅니다. 아직 누군가의 새해 소망 속에 내가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교정시설 내에서 부정행위가 근절되고 모든 수용자들이 건강한 수용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현재 교정시설에서는 많은 수용자들이 정신과 진료를 통해 수면제 등을 비롯한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약이 꼭 필요한 분들도 있지만,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고 일어나면 출소날이겠다 싶을 정도로 아침, 점심, 저녁, 취침 전까지 수면제를 복용하며 수면제에 의존하는 중증 수용자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약을 거래하기 위해 처방받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처방받은 약을 숨기려고 혀 밑이나 잇몸 속 깊숙이 넣거나, 약을 먹은 척하고 먹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약을 받고서 바닥에 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 수용자들은 이렇게 숨긴 약들을 교정시설 내에서 수수·거래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용되어 있는 중에도 이런 행위들로 벌금형부터 실형까지 선고된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한정된 인력의 교도관이 수용자들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기도 어렵고, 다수 수용자들이 먹는 많은 양의 약을 하나하나 다 확인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제약을 악용해 이러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부 수용자들 때문에 실질적으로
1975년 부산 민락동 언덕 위 ‘학산별장’ 정원에는 장미가 가득했고, 독일산 셰퍼드 5마리가 집을 지켰다. 마을과는 단절된 채 오직 “수도검침원만 드나든다”는 소문만 돌았다. 그 집 주인은 훗날 신문 지면을 뒤덮은 이름, 히로뽕 밀조 조직 두목 이황순이었다. 이황순은 충북의 한 대학교에 입학한 뒤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대학을 중퇴한 뒤 부산으로 향했다. 그가 택한 길은 조직폭력배였다. 폭력조직 ‘칠성파’에 가입한 그는 1960~70년대 부산 지하세계가 ‘밀수’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자연스럽게 밀수에 손을 댔다. 당시 부산은 대마도와 거리가 가까웠고, 일본산 물품이 귀하던 시절이라 국제시장 등을 중심으로 밀수품 거래가 일상처럼 벌어졌다. 이황순은 소형 밀수선이 아닌 합법 무역선을 활용한 대형 밀수에 나섰다. 해상 운반책, 양륙책, 감시책, 육상 운반책, 보관책, 자금책으로 역할을 세분화해 조직을 체계화했다. 그러나 정부가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단속에 나선 결과, 1972년 2월 그는 결국 검거돼 징역 4년과 벌금 1400만원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수감 이듬해인 1973년 폐결핵 진단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출소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한식조리산업기사(2년) 과정을 진행 중인 교육생입니다. 지난해 12월에 기능사에 합격하였고, 2026년에는 산업기사 취득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2년의 한식조리산업기사 과정 중 첫 1년을 마무리하며 제가 느낀 점, 학과 공부 과정 등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선발 과정 처음 한식조리산업기사를 신청할 때에는 별달리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2년 과정이고, 신청을 위한 경쟁도 치열하지 않을 것 같고, 공부를 하며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신청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 교육생 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소 출역 공장 동기들로부터 많은 축하와 응원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필기시험 관련 그런데 막상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의 생활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입소 첫 달부터 필기시험 대비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재의 중요한 부분을 필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가면 매일 모의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보는데, 처음에는 반도 못 맞혔습니다. 그래서 틀린 문제 필사를 하면 이불을 깔기 직전까지 할 때가 많았습니다. 혹독한 공부에 적응을 하지 못해 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