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수에게만 적용되는 부정기형 제도가 법 취지와 달리 장기형 위주로 운용되며 사실상 확정형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형의 3분의 1이 경과한 시점부터 교화 성과를 평가해 석방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제도적 장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소년범들이 오히려 소년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재판을 지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15일 <더시사법률> 취재를 종합하면, 부정기형은 형 집행 단계에서 소년수의 개선·교화 정도를 평가해 석방 시점을 유연하게 정하는 특별예방적 제도다. 예컨대 단기 3년, 장기 5년을 선고받은 경우 단기 경과 시점부터 교정 성적에 따라 출소 가능성을 열어두는 구조다. 소년법 제60조 제1항은 장기 2년 이상의 유기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19세 미만 소년에 대해 장기와 단기를 정해 선고하도록 규정한다. 일반 범죄의 경우 장기는 10년, 단기는 5년을 초과할 수 없다. 같은 조 제4항은 단기형이 지난 뒤 행형 성적이 양호하고 교정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되면 교정시설장이 검사의 지휘를 받아 형 집행을 종료시킬 수 있다. 또 소년법 제65조는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소년에 대해 단기의 3분의 1이 지나면 가석방을 허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부정기형은 소년수 처벌의 핵심 양형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0~2025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제1심 형사공판에서 19세 미만 피고인에게 부정기형이 선고된 인원은 2020년 908명(27.7%), 2021년 779명(31.4%), 2022년 621명(24.4%), 2023년 1045명(34.6%), 2024년 649명(27%)으로 집계됐다. 소년부 송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비중이다. 문제는 소년법 제65조가 규정한 ‘단기 3분의 1 경과 시 가석방’ 허가 규정이 현장에서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퇴직한 한 교도관은 “단기부터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규정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소년수들 사이에서도 부정기형은 조기 출소 제도가 아니라 장기 수용을 전제로 한 형식적 장치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2020년 대법원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형 집행 종료 결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부정기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형 집행 기간은 단기형이 아니라 사실상 장기형에 가깝다”고 판시했다. 이로 인해 재판 현장에서는 소년법을 기피하는 전략까지 등장했다. 소년법 적용 여부는 범행 시점이 아니라 사실심 판결 선고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해 성인이 된 뒤 정기형을 받으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컨대 단기 3년, 장기 5년의 부정기형이 예상될 경우, 관행상 장기 5년을 모두 복역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재판을 지연해 성인으로서 정기형 4년을 선고받는 것이 수형 기간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년의 교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제도가 오히려 더 엄중한 형벌로 작동하면서, 성인 정기형을 선호하는 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정기형 제도가 ‘교화 가능성’을 전제로 한 소년 처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운용 방식은 제도의 본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형식상 단기와 장기를 병존시키고 있지만 실제 집행은 장기형을 기준으로 이뤄져 부정기형이 사실상 확정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소년수 부정기형은 단기 경과 시점부터 개선 여부를 재평가해 석방 가능성을 검토하도록 설계된 제도”라며 “현실에서는 장기형을 얼마나 채웠는지가 출소 기준처럼 작동하면서 법이 예정한 교화 중심 운영 원리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에서도 드러났듯 단기 심사와 형 집행 종료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라면 이는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법 집행의 구조적 실패”라며 “법무부와 교정당국이 단기 기준 심사와 집행 종료 제도를 실질화하지 않는다면 부정기형은 이름만 남은 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중수청 및 공소청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 검찰개혁안이 공개된 뒤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단 일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사퇴했다. 이에 같은 자문위원이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는 중수청·공소청의 안정적 출범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입장을 밝혔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전날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 소속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및 김필성·한동수·장범식·김성진 변호사 등 6인은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 12일 입법예고된 중수청법·공소청법을 두고 “당혹감을 넘어 모욕감을 느꼈다”며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을 배신하는 법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자문위원들은 공소청법이 대검·고검·지검의 기존 3단 구조를 사실상 유지하고 있고, 중수청법은 자문위가 주장해온 4대 범죄가 아닌 9대 범죄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중수청 조직을 수사사법관과 전문수사관으로 이원화한 설계에 대해 “제2의 검찰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공소청 검사가 중수청 송치 사건과 관련해 다른 사건의 입건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역시, 보완수사권이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로 유보된 상황에서 통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박준영 변호사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문위원 사퇴 움직임과는 결이 다른 입장을 내놨다. 박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목적은 국민의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고 형사사법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며 “수사·기소 분리나 검찰 수사권 박탈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자문위원에 합류한 이유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방향 속에서 제도 변화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등 재심 사건을 맡아온 ‘재심 전문 변호사’로, 지난해 10월부터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박 변호사는 공수처 출범 당시의 혼선을 언급하며, 신생 수사기관이 충분한 숙련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구조적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중수청이 약 3000명 규모로 9대 중대범죄를 담당해 연간 2만~3만 건의 수사를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출범 초기 인력 공백은 공수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수청 수사 인력의 일원화·이원화 논쟁과 관련해서도 “장기적 화합과 직무 특성을 고려하면 일원화가 매력적일 수 있으나 출범 초기 혼선 최소화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검사 전직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설문 결과를 소개하면서도, 중대범죄 수사 역량의 급격한 유실이 국민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추진단이 안정적 출발을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또 “형사사법은 실험이 아니다”라며 “큰 사건, 어려운 사건이 성급한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리버 웬들 홈스 전 미국 연방대법관의 법언을 인용해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매몰되면 본질을 놓친 채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그는 검찰을 ‘악마화’하는 접근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박 변호사는 “2000여 명의 검사 중 권력형 검사는 일부에 불과하다”며 “현장에는 묵묵히 기록을 검토하고 공소를 유지하며, 성폭력·가정폭력·아동학대 사건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애쓰는 직업인으로서의 검사들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 논의가 ‘누구를 배제할 것인가’에만 매몰된다면 또 다른 모순을 낳을 수 있다”며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부터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입법 논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두고 군부대 등을 사칭해 국내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이른바 ‘노쇼 사기’를 벌여온 한국인 범죄단체 조직원들이 정부 합동 수사에 붙잡혀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범죄 정부합동수사부(부장검사 김보성)는 15일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노쇼 사기 범죄단체 조직원 2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과 국내를 오가며 활동한 조직으로, 한국인 총괄 1명과 팀장급 3명, 모집책 1명, 유인책 등 팀원 18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17명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고, 수사 착수 이전에 입국한 6명은 국내에서 붙잡혔다. 합수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이 확보한 국제범죄 첩보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해 캄보디아 수사당국과 공조했으며 약 3개월 만에 조직원 전원을 검거했다. 현지에서 체포된 조직원들은 40일 만에 국내로 송환됐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군부대와 병원, 대학 등 주요 기관 직원을 사칭해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수법은 1차 유인책이 식당과 소상공인에게 단체 예약 전화를 걸며 와인·가구 등 물품을 특정 업체를 통해 대리 구매해 달라고 요청하고, 2차 유인책이 해당 판매업체를 사칭해 구매대금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업주가 지정된 계좌로 대금을 입금하면 조직은 돈만 챙긴 채 연락을 끊었다. 이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은 215명에 달했으며, 피해 금액은 약 38억 원으로 집계됐다. 조사 결과명함과 물품 구매요청서, 입금 요구 금액이 포함된 대본 등을 사전에 제작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명의의 허위 구매 공문을 만들거나, 특정 부대 마크와 슬로건이 기재된 가짜 명함을 제작해 ‘부대 물품 담당 장교’로 행세한 사례도 확인됐다. 사칭 대상은 군부대뿐 아니라 대학과 병원 등으로 다양했다. 합수부가 확보한 텔레그램 대화 내역에는 추석 연휴 등 상점 영업이 제한되는 기간에도 범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피해자 심리를 분석해 범행 대본을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한 정황이 담겼다. 한 조직원은 가구점에 “대학 건물 리모델링으로 노후 책상을 교체해야 한다”며 재고를 문의한 뒤, ‘대학 시설기획팀 업무 총괄’이라는 직함이 적힌 가짜 명함으로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조직은 총책을 정점으로 한국인 총괄, 팀장, 유인책으로 이어지는 위계를 갖추고, 사칭 기관별 범행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조직적으로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수익은 유인책별로 분리·취합해 실적에 따라 수당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으며, 피해자 입금 내역이 공유되는 텔레그램 방에서는 이를 조롱하는 메시지까지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부는 지난해 9∼11월 1차 유인책 4명과 조직원 모집책 1명을 먼저 구속 기소한 데 이어, 이후 한국인 유인책들을 총괄한 관리자급 40대 남성을 포함한 나머지 조직원들도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되는 총책과 국내 공범들에 대해서도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동부지검에 따르면 합수부는 지난해부터 캄보디아 등 해외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원 199명을 입건했으며 이 가운데 103명을 구속했다. 합수부는 “물품 대리 구매를 요청하는 예약 전화는 사기 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해외 체류 중인 총책과 국내 가담자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해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사무실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사건기록이다. 책상 위에 정리된 파일을 펼치면, 늘 같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사실관계’, 변호사의 하루는 이 단어에서 시작해 이 단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률서면은 언제나 사실관계 위에 세워지고, 사실관계가 흔들리면 그 위에 쌓은 모든 논리도 함께 흔들린다. 나는 변호사다. 그리고 습관처럼 모든 문장을 근거 위에 세우려 한다. 의뢰인은 종종 결론을 먼저 묻는다. “이길 수 있나요”, “실형이 나올까요”, “집행유예 가능성은 있습니까”. 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는다. 먼저 기록을 펼치고, 조문을 확인하고, 판례를 살핀다. 그 과정이 번거롭고 느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논리의 뼈대가 서면 안에서 먼저 서지 않으면 법정에서의 말 한마디는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수없이 경험해 왔다. 서면은 결국 말의 예행연습이자, 판결을 향한 가장 첫 번째 설득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서면은 종류가 달라도 기본 구조는 같다. 소장이든 준비서면이든, 변호인 의견서나 항소이유서든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사건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평가인가. 무엇이 다툼 없는 사실이고, 무엇
사무실로 찾아온 의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 조금만 더 빨리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막연히 ‘빨리 맡았으면 잘 풀렸을 사건’이라면서 의뢰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왜 더 빨리 오시지 않았느냐’며 뒤늦게 오신 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음을 한스러워하는 것에 가깝다. 동명의 의학 드라마를 통해 많이 다뤄진 의학계 용어가 있다. ‘골든 타임(정확히는 ‘골든 아워’)’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중상을 입은 후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로 이 시간 내에 적절한 응급 치료가 이루어지면 중상을 입었더라도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면 이 시간을 놓치게 되면 생존 가능성도 급감한다. 법조계에도 이런 ‘골든 타임’이 있다. 사건이 발생한 뒤 사건이 의뢰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도와드릴 수 있는 최적의 시간. 나는 그것이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랫동안 끙끙 앓고 계시다가 뒤늦게 사무실을 방문한 의뢰인의 경우, 사건이 이를테면 많이 ‘망가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 이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석방 인원을 30% 정도 확대하도록 지시했고, 9월 가석방 출소 인원은 1218명으로 지난 5~8월 월평균 가석방 인원(936명) 대비 약 30% 증가했다. 법무부는 지난 11월 ‘2026년 가석방 확대안’을 통해 월평균 가석방 허가 인원을 2025년 1032명에서, 2026년에는 약 1340명으로 전년 대비 30% 확대하여 재범 위험성이 낮은 수형자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석방에 관련된 규정으로는 형법(제72조~제76조),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제119조~제122조), 같은 법 시행규칙(제236조~제263조), 가석방 업무지침 등이 있다. 형법 제72조에서 정한 가석방의 허가요건은 징역‧금고의 집행 중인 자가 최종 형기 종료일 기준으로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고, 행상이 양호하며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경우다. 형법 제37조 후단의 경합범 등으로 인해 1개의 판결로 수 개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도 ‘각 형의 형기를 합산한 형기’나 ‘최종적으로 집행되는 형의 형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각 형의 형기’를 의미한다. 즉, 수 개
성범죄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기소도, 재판도, 선고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점, 처음 조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방향이 정해진다. 첫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질문에 어떤 태도로, 어떤 말로 응답했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그 짧은 시간 동안 사건의 ‘인식’이 형성된다. 이때 형성되는 것은 단순한 첫인상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바라보는 기준점이며, 이후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종종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처음 어떻게 말했는가’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초기 진술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었는지에 따라 사건은 전혀 다르게 기록된다. 필자는 같은 상황이 어떤 사건에서는 계획적 범행으로, 또 다른 사건에서는 우발적 상황으로 해석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 차이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초기 진술의 구성 방식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정리되지 않은 진술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사건의 방향을 고정해 버린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에 잘못 정리된 진술은 이후 아무리 보완해도 ‘사후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기 쉽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고 충분히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구치소가 있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제가 구치소에 수감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됐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 내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에는 ‘실제로 일을 주도하고 지시했던 사람은 밖에 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나’ 하는 억울함에 사로잡혀, 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나의 탓이며,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던 일이 잘못된 일인 것을 알게 됐을 때 똑바로 생각해 보고 일을 그만둘 용기를 냈어야 했습니다. 제가 제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제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며 살았던 결과 이곳까지 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제가 했던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지금은 사회로 돌아갔을 때 다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처음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이송되던 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눈물을 흘리며, 행여 나오는 호송 차량에 남편이 타고 있지 않을까 발을 동
제가 지내는 이곳 방에는 마흔 개의 하늘이 있습니다. 밖을 바라보는 창에 차가운 쇠창살이 드리워져 하늘이 마흔 개로 조각나 보이는 탓입니다. 넓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는 탓인지 생각도 점차 얕아져, 어머니의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겨드렸네요. 어찌해야 할까요? 지금 제 눈가에 어룽어룽 맺힌 이 눈물이 어머니 가슴에 얼룩진 상처를 지울 수 있을까요? 매번 드리는 죄송하다는 말이 오늘도 역시 못난 아들의 인사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매번 어리석음에 취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아직까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저는, 언제쯤이면 어머니와 침묵 속에서도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누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을 넉넉히 나눌 수 있게 될까요? 제 나이가 벌써 40대 후반입니다. 그런데도 투정을 부리며 삶의 비포장길을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셨나요? 감사 쓰기를 하면서 소장상을 안겨드리고 환히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머릿속에 감사를 채우려 분투하기 전에 모자란 인성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오늘 접견실을 나서며 깨달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표현은 못 했지만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나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하면서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건축 설계 회사에 취업해 열심히 일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에 비하면 승진도 빨랐고,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게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결혼을 했고,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힘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방황했고, 어떻게든 감당해 보려 했으나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부부 사이가 멀어졌고, 결국에는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인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좋지 않은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셨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한순간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구속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이곳에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고 이게 정말인지 알 수 없어 부끄럽다. 분명한 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나다운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숱하게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답게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남은 날들은 최선을 다해서,
안녕하세요. 저는 2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재판을 받은 끝에 형이 확정되어 최근 기결수가 된 사람입니다. 항소에 상고를 거치며 여러 교도소를 오갔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중형을 선고받고 그동안 일궈온 모든 노력이 순간 물거품이 되어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분도 있었고, 2년여 전 교도소에서 만날 무렵 출소하고 사회 복귀를 했었는데 몇 달 만에 다시 죄를 짓고 들어와 금방 교도소에서 재회한 분도 있었습니다. 또 30년간 공직 생활을 한 공무원이었는데, 뇌물수수죄로 재판을 받으며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무너진 분도 생각납니다. 이처럼 삶이 무너진 이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저 자신에 대한 깊은 상실감과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지독했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교 1등을 목표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높은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취준생 시절에는 대기업을 목표로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방향을 설정하는 것보다는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도록 속도를 내는 것에 치중하게 됐습니다. 몇 번의 실패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실패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한 번에 큰돈을 벌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