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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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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행정까지 검찰 권한이 집중된 구조 검찰이 형 집행 전 과정에서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하며 교정행정의 실질적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교정행정에 대한 검찰의 과도한 영향력 역시 개혁 논의의 주요 의제로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형의 집행뿐 아니라 수감시설 배정, 처우 결정 등 교정 현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는 중증장애를 가진 수형자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담당 검사가 이를 자의적으로 불허했다. 이후 법원은 해당 처분이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심의위원회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이유로 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검사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형집행정지는 수형자의 생명이나 건강이 현저히 위태로운 경우, 또는 임신·출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제도다. 형사소송법 제471조 제1항에 따르면 ‘형의 집행으로 인해 현저히 건강을 해할 염려가 있는 때’에는 검사가 형집행정지를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471조의2는 지방검찰청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형집행정지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으나,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검사에게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의 영향력은 형집행정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피고인의 구속 집행부터 수감시설 배정, 처우 결정, 사면 제청에 이르기까지 교정행정 전반에 검찰의 판단이 개입한다. 형사소송법 제81조는 구속영장의 집행을 검사의 지휘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구속된 피의자나 피고인을 어느 구치소에 수감할지 결정하는 단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검찰청의 관할을 기준으로 수감시설이 정해지지만, 실무에서는 검사의 집행 지휘가 전제된다. 각 구치소의 수용 여건이나 공범 분리 수용 필요성 등 교정행정상 판단에도 검찰의 의견이 반영되며, 특정 시설의 수용 능력이 포화 상태이거나 사건의 성격상 분리가 필요할 경우 다른 시설로 조정되는 과정 역시 검사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다. 법령에 근거한 ‘검찰의 광범위한 재량권’ 검찰의 권한은 법령에 근거한다. 검찰청법 제4조 제1항 제4호는 검사의 직무에 ‘재판의 집행 지휘·감독’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형 집행 개시·정지·변경에 이르는 포괄적 권한을 부여한다. 형사소송법도 검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한다. 제462조는 두 개 이상의 자유형이 선고된 경우 검사가 소속 장관의 허가를 받아 집행 순서를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제467조는 사형 집행 시 검사의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제471조는 수형자의 생명·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 검사가 형집행정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형 집행의 시작부터 중단, 재개까지 검찰 판단이 작용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사면법도 검찰의 역할을 전제로 한다. 교정행정에도 ‘검찰 견제 장치’ 마련돼야 사면법 제12조는 형 집행을 지휘한 검사나 교정시설의 장이 특별사면 또는 감형을 제청하려면 검찰총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어 사면법 제11조는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보고를 받아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사면이나 감형 상신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형 집행 현장의 판단이 검찰총장을 거쳐 사면 제청 단계로 연결되는 구조로, 사면 절차의 출발점이 검찰의 판단에 놓여있는 셈이다. 검찰의 영향력은 교정시설 내부 단계에서도 이어진다. 특히 ‘형집행순서 변경’ 제도는 검사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 이 제도는 복수의 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가벼운 형부터 먼저 집행받기를 희망해 검찰에 신청하는 절차다. 수형자 입장에서는 조기 가석방 요건을 갖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실무에서는 명확한 기준 없이 검사의 판단에 따라 허가 여부가 달라진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형집행순서변경 허가 또는 불허는 교정시설 소재지 관할 검찰청에서 개별 사건의 타당성에 따라 판단한다”며 “정형화된 기준을 제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집행순서 변경 허가 여부가 검사 재량에 좌우된다는 점은 결국 가석방 시점 역시 검찰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형의 집행에서 사면에 이르기까지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며 “교정시설은 형을 집행하는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검찰의 사전 판단을 따르는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의 재량이 법에 근거한 권한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견제할 실질적 장치가 부족하다”며 “최근 출범한 검찰개혁추진단이 교정행정 영역의 권한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진정성 있는 제도 개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Q. <더시사법률> 독자분들 사이에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변호사 1순위’로 늘 이름이 오릅니다. 먼저 스스로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신다면, 어떤 변호사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재심 사건을 주로 맡아온 변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남 완도군 노화도에서 태어나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목포대학교에 진학했다가 군 복무 후 복학하지 않아 중퇴했습니다. 서울 신림동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해 2002년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지금까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박 변호사님 이야기를 하면 ‘등대장학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처음 장학회를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첫 재심 사건이 ‘수원 10대 소녀 상해치사 사건’이에요. 무죄 판결을 받고 보상금이 나왔을 때 아이들에게 “이 돈의 10%를 좋은 곳에 쓰자”고 했죠. 그리고 청소년 단체, 미혼모 시설, 세월호 피해자 단체 등에 후원을 했습니다. 그 이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 연이어 무죄가 나왔는데 그분들이 저에게 “10%를 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돈을 다시 유가족이나 피해자 지원에 쓰고, 진범을 잡은 형사분께도 일부를 나누고, 남은 돈을 모아뒀습니다. 그렇게 모인 금액이 1억원이 넘었어요. ‘이 돈으로 좋은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사법 피해자를 돕는 단체를 만들까도 고민했어요. 그런데 밀려드는 억울함을 감당할 인력과 재원을 갖추기 어렵다고 봤어요. 반면 아이들을 돕는 일은 학교 선생님, 교육복지사, 여러 센터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마침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분들이 “좋은 일에 써달라”고 하셔서 그분들이 받은 보상금까지 합쳐 약 5억 9000만원으로 장학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이제는 ‘재심 전문 변호사’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약촌오거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분을 담당했던 천동성 교도관님을 비롯해 같이 최군을 돌봤던 여러 교도관님들이 “박 변호사님께 꼭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전했습니다. 천동성 교도관님 그리고 여러 교도관님들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20년 넘게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 선생님은 진범 이춘재의 등장으로 30년 만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살인범’이라는 낙인과 가족조차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서도 그가 긴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억울함을 알아주고 믿어준 교도관님들의 온기 덕분이었습니다. 교도관님들은 돌아가며 영치금을 보태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줬죠. 특히 청주교도소의 박종덕 교도관님은 윤 선생님과 수형자·교도관으로서 17년, 출소 후에는 인생의 선후배로 지금까지 15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출소 뒤 머물 곳과 일터를 알아봐준 것도 박 교도관님이었어요. ‘약촌오거리 사건’의 최 군을 알아봐 준 천동성 교도관님과 여러 교도관님들 역시 그늘진 곳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일 것이라고 봅니다. Q. 지난 28일 무죄 판결을 받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이야기를 해볼게요. 이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9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세 차례 방송된 바 있습니다. 2015년에는 한 작가분이 다른 매체를 통해 20부작 기사로 연재하면서 저에게 연락을 주셨고, 2017년에는 직접 재심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당시엔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이 나간 사건이라 ‘새로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고, 기록을 깊이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초, 평소 친분이 있던 작가님이 “이건 정말 억울한 사건 같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 말을 계기로 다시 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순천지청에 찾아가 창고에 보관 중이던 기록을 확인해보니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빠져 있더군요. 심지어 수사 영상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잠깐만 봐도 “이건 수사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서도 두 차례 다뤄졌고요.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월 2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청산가리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의 허위 자백’이었습니다. 이분들 역시 지적장애인 못지않게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데, 정작 법적 보호는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심 과정에서도 저는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저는 재심이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절차가 아니라 현재 제도의 허점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산가리 사건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법적 보호의 필요성을 널리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Q. 재심 사건을 맡으실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십니까? 제가 사건을 맡을 때 중요하게 보는 건 억울함을 주장해온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곁에서 함께 싸워준 사람이 있는지입니다. 억울함을 주장한 기간이 길고 선한 연대가 함께 한 경우에는 뭔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접근합니다. 과학적 증거에 대한 맹신과 안일한 판단으로 진실을 놓칠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3년에 발생한 ‘진도 저수지 추락 사건’입니다. 내년 2월에 재심 선고가 예정된 사건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다가 차가 저수지에 빠졌는데, 아내는 사망하고 남편만 살아나왔습니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지만, 법원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으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죠. 그분은 수감 중에 저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셨고, 밖에서도 그분을 도우며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던 분이 메일을 주셨습니다. 처음엔 판결문을 보고 ‘이건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과수의 법의학, 자동차공학, 약리학 감정 등 유죄의 근거가 너무 탄탄했거든요. 그래서 “이건 거짓일 수 없다”고 단정했죠. 그리고 어느 날 한 방송사 기자분이 같은 편지를 받고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당시엔 “이건 이미 다 끝난 사건”이라며 만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작가 중 신뢰하던 분이 “이 사건, 뭔가 이상하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그때 다시 기록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제 판단이 틀렸다는 걸요. Q.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나 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에 따른 재심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재심은 사실상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현행 재심제도의 구조적 문제나 한계에 대해 변호사님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여러 재심 사건을 진행하며 경험한 재심 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솔직히 생각이 좀 복잡합니다. 알아갈수록 궁금증이 더 늘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했던 문제도 요즘은 한 걸음 물러서 보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요즘 주목하는 문제 세 가지 정도를 간략히 말씀드리는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사건별로 수사·재판의 문제 못지않게 변호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저 역시 지식과 경험의 부족, 때로는 불성실로 인해 변호를 잘못한 사건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해야 할 주장과 증거의 수집·제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심리가 부실해지고, 결국 오판으로 이어진 사례들의 경우, 이런 변호인의 결함을 재심 사유로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는 현재 제도상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변호사들이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수사에서의 통·번역 문제도 재심 사유로 구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 달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첫 심문기일이 열리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무기수 아크말 사건’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려고 합니다. 아크말의 재심이 외국인 수사·재판을 보다 인권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사건은 통·번역 외에도 여러 절차적·실체적 결함이 뚜렷해 재심과 무죄가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타국에서 찾아오는 이도 없는 외로움 속에서 저를 믿고 견디는 아크말에게 깊은 신뢰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공범의 허위진술이 죄의 성부나 양형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사건이 적지 않습니다. 위증을 인정받는 게 필요하지만 확정판결 이후 그 증언의 허위를 밝히는 일은 판결을 뒤집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복역 중 무기형으로 감형되어 현재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재천 선생님의 재심을 하루빨리 추진하고 싶습니다만 아직은 마음이 앞섭니다. 교정시설 독자 비율이 높다고 알려진 <더시사법률>과의 인터뷰는 전재천 선생님께 제 진심을 전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힘내세요!” Q. ‘페스카마호 사건’의 전재천씨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합니다. 현재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네, 면회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꼭 이 사건은 제가 돕고 싶습니다. 증삼살인(曾參殺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증삼)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살인을 하였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증자의 사람됨을 알기에 처음에는 그 말을 무시했는데, 조금 있다고 또 한 사람이 뛰어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이번에도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달려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니 어머니도 놀라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공범으로 유죄가 확정된 선원들도 여전히 수감 중이에요. 그분들이 용기 내어 진실을 말씀해 주신다면 사건을 바로잡는 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까지 함께 논의할 계획입니다. Q. 전재천씨는 어떤 분이길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시는지요? 이분은 교도소 안에서도 매우 품격 있게 생활하세요. 교도관들에게도 신뢰받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복역 중이지만 단 한 번도 저를 재촉한 적이 없어요. 늘 절제된 언어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죠. 재심을 도우면서 ‘이분의 고통을 견디는 삶’을 배우고 싶습니다. Q. “재판부가 증거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합의가 누락됐다” 등 재심이 가능한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김신혜 씨 사건처럼 25년 전 수사기관이 한쪽 증거만 수집하고,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 내역 같은 결정적 자료를 배제한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요. 이런 것들이 재심 사유가 될 수 있을까요? 판결문에 특정 증거가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재판부가 그 증거를 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합의 누락은 비공개 절차라 입증이 어렵고, 합의 없이 선고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주장만으로는 재심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재심은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열거된 7가지 사유 가운데 하나에 해당해야 합니다. 단순한 심리 미진이나 절차상의 아쉬움은 그 요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사기관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고의로 숨기거나 제출하지 않은 경우, 그 증거가 ‘무죄를 입증할 명백하고 새로운 증거’로 평가된다면 재심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또한 검사가 직권을 남용해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방해한 것으로 법리 구성을 해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제7호) 성립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김신혜 씨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마지막 통화 내역 조사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25년이 지난 지금 이를 단정하긴 어렵기 때문에 재심 사유로 직접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당시 수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재판부가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Q. 교도관분들과는 자주 연락하시죠? 박 변호사님께 교도관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제가 맡았던 사건 중에는 교도관의 제보로 시작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대구 장미비디오 살인사건’이 그랬죠. 한 교화위원님이 오랫동안 수감자를 지켜보시며 “이 사람은 정말 억울해 보인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 제보가 교도관을 통해 저에게 전달됐고, 사건을 맡게 됐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러시아 여성 사건’도 있습니다. 당시 교도관이 “이분은 정말 억울한 것 같다”고 하셔서 변호를 맡았어요. 결국 그분은 가석방으로 러시아로 돌아가셨는데 출국 전까지 “제 사건을 꼭 밝혀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사건의 재심을 준비 중입니다. 저는 교도관을 통해 들어온 제보는 특히 더 유심히 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24시간 수감자와 함께 지내며 말과 행동, 태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분들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분들이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면 정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Q. 앞으로 변호사님의 목표나 계획, 그리고 분명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억울한 사법 피해를 호소하며 재심 등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여러 경로로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이유로 대부분 거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긴 분들에게 전혀 쓸모없고 형식적인 변명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안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 도움을 오래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신 분, 끝내 세상을 떠나신 분도 계십니다. 현재 10건이 넘는 재심 사건을 진행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연을 맺지 못하는 점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그 인생에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마주하고 고치려 한 노력이 얼마나 스며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심 사건에서 만난 얼굴들에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 가장 추운 자리의 고통이 비쳤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그 아픔과 함께하겠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수용공간 확보 지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특검팀은 5일 오전 신 전 본부장을 세 번째로 소환해 박 전 장관의 지시 경위와 법무부 간부회의 당시 논의 내용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신 전 본부장은 계엄 선포 직후 교정본부 내부에 “수용 여력을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린 인물로, 박 전 장관의 직접 지시를 받은 핵심 실무라인으로 꼽힌다. 특검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4일 자정 무렵 각 기관 상황실장에게 “수용관리 철저, 복무기강 확립, 상황보고 체계 유지”를 지시했고, 약 20분 뒤에는 “5급 이상 간부는 비상대기하라”는 추가 지시를 교정기관에 전달했다. 이후 신 전 본부장은 교정시설 기관장들과 긴급 영상회의를 열어 수용 여력을 점검하고, 수도권 구치소의 ‘3600명 추가 수용 가능’ 보고서를 작성해 박 전 장관에게 메신저로 전송한 뒤 삭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교정본부 내부에서 ‘전시 가석방 제도’ 검토가 오갔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는 경미한 범죄자를 일시 석방해 수용공간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당시 법무부가 내란 대비 수용 시나리오를 실제로 논의했다는 정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검팀은 최근 법무부 교정본부 일부 부서를 추가 압수수색하고, 관련 내부 보고서와 통신 기록 등을 분석해 혐의 입증을 보강했다. 이를 토대로 조만간 박 전 장관에 대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다.
' 변호사로서 가장 마음이 무거운 순간은 성범죄 혐의를 받는 의뢰인을 처음 만날 때다. 억울함과 두려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은 사건을 수행하는 내내 잊히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성범죄 피의자가 된 사람,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중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사람…. 사회적 낙인, 직장에서의 퇴사 압력, 가족들의 의심 속에서 그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내가 맡은 사건 대부분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은 그 내용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도2433 판결).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 아래 피의자는 이미 ‘가해자’로 낙인찍힌 채 수사받는다. 피의자의 진술은 ‘변명’으로 치부되지만, 고소인의 진술은 ‘피해 호소’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적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는 치밀한 법적 대응으로 의뢰인들의 무혐의
법조인의 길을 오래 걷다 보니 필자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판사로 있을 때가 사람이 더 단단해 보였다”는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법복을 입고 재판정을 바라볼 때는 세상이 놀랍도록 정리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 보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증거’가 보인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법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그 자리는 겉으로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지금, 나는 그 ‘정리된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사정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더 자주 느낀다. 판사로 있었을 때는 기록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보니 그 기록에 닿기 전 의뢰인의 시간과 그가 어떤 사정으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길을 먼저 보게 된다. 법정 안에서는 정리되어 있던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판결문에 쓰인 문장은 단정하지만 그 몇 줄의 기록에 불과한 사정 뒤에는 한 사람의 가족, 삶의 무게, 그리고 수많은 감정이 있다. 판사의 일은 냉정하다. 결정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이 책상 위에 쌓이고 각 사건의 피고인, 피해자, 변호인, 검사가 제각각의 입장을 내세운다. 그 속에
현직에 있을 때 교정 인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곳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며칠 전 후배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직도 개선된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글을 쓴다. 근무평정을 잘 받는 요직에 있다가 업무 관련 비위를 저질러 징계를 받은 직원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같은 근무지에 배정되고, 승진시험까지 합격한다. 또 일선에서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새벽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던 사람이 본부의 요직을 돌아다니는 현실을 들을 때면 마음이 착잡하다. 교정의 날을 맞아 언론에서는 ‘수용자가 난동을 부리는 영상’, ‘교도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식판을 던지는 영상’ 등을 내보내며, ‘수용자 100명을 교도관 1명이 담당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교정본부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원들을 위해 어떤 실질적 정책을 펼쳤는지는 묻고 싶다. 1990년대 C교도소의 야근 1개 부 인원은 약 50명이었다. 3부제에서 4부제로 전환되며 1개 부 40명 정도로 줄었고, 이후 근무 체계가 몇 차례 개편될 때마다 야근 인원은 계속 줄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개 부 인원이 26명 내외로, 전체 야근 인력이 56명가량 감소했다. 전국 교정기관의 상황도 대체로 비슷
형사전문변호사로서 법정에 서온 11년, 15000여건의 사건을 마주하며 가장 깊이 새겨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구치소 철창을 사이에 두고 의뢰인과 나누었던 절망의 무게, 그리고 마침내 석방이 선고되던 순간 법정을 가득 채우던 안도와 환희의 교차였다. 변호사의 일은 냉랭한 기록과의 씨름이지만, 그 끝은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의 삶을 뒤바꾸는 가슴 뜨거운 결과로 귀결된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법조문은 간결하지만, ‘구속’이라는 두 글자가 한 개인에게 가하는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와의 단절, 직장과 생계의 상실, 가족의 해체,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자’라는 낙인과 함께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 이 모든 것이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한 개인을 덮친다. 변호사에게 구속된 의뢰인과의 접견은 단순한 법률 상담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 선 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을 마주하는 일이며, 그의 무너진 삶을 법리라는 도구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고된 과정의 시작이다.
To. 대구 싸나이 손양 사랑하는 우리 오빠! 우선 다가오는 11월 13일, 오빠의 46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먼 길 돌아 만나게 된 우리지만 길 잃지 않고 나에게 와주어서 너무 감사해. 지금 당장은 우리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지금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다 보면 분명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 사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어. 이 힘든 길에 오빠를 끌어들여서 내가 너무 미안해. 그렇지만 오빠가 나 믿고 기다려 준다면 평생 변하지 않을 큰 사랑으로 꼭 보답하도록 할게. 자신 있으니까 이렇게 남들 다 보라고 쓰는 거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우리 오빠 사랑하는 일이야. 다시 한번 더 생일 축하하고 내가 영원히 사랑해요! 오빠의 미 올림.
To.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창살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면,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나가 걷던 그 골목,그 벤치가 떠올라요. 그때 어머니가 저에게 “정말 믿음직스럽게 자랐구나” 하며 미소 지으시던 모습이 아직도마음속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과 사랑을 저는 저 스스로 저버리고 말았어요. 저의 욕심과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그동안 어머니께서 흘리셨을 눈물과 밤잠을 설친 시간이 제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곳 생활은 쉽지 않지만 저는 이 시간을 저를돌아보는 시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오늘 하루는 작지만 착한 일을 하며 살아보자” 하고 다짐해요. 다른 수용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자만했는지, 얼마나 나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어머니, 다시 기회를 얻는다면 어머니의 손을꼭 잡고 싶어요.그리고 어머니께서도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감기 기운으로 고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소식에 제 뺨이 뜨거워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시면 저도 마음
인생사 새옹지마 안녕하세요. 사연을 이렇게 보내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그냥 한번 보내봅니다. 저는 2년의 실형을 받고 형기를 채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번 연도 1월 24일에 취사장 출역을 나가게 되었고, 초범인지라 가석방의 꿈을 아주 크게 안고 있었지요. 그런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저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석방을 생각하며 4월까지 꾹 참고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졌고, 그대로 있다가는 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 작업을 거부하고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네… 그래서 가석방의 꿈은 그렇게 물 건너가게되었는데, 저를 괴롭혔던 그 사람은 5월에 가석방을 받아 나갔더라고요? 하하….다시 미지정 사동으로 가서 지금 지내는 이곳으로 이감을 오기 전까지, 거의 매일매일을 원망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던가요? 이감을 온곳에서 귀인을 만났고, 여러 부정적인 생각과 불타버린사고 회로를 싹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그 사람에게) 고맙더라고요? 나중에 만나게 되더라도적당히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여러분, 당장 힘든 일이 있더라도 진짜 언젠가는 보답을받더라고요. 섣불리 행동해서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는 일을 가시고 항상 할머니께서 해주신 음식을 먹으면서 지낸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 100세가 되셨는데, 옆에서 같이 있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고 치지 않고 잘 지내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사고를 치고 구속이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죄를 뉘우쳐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시는 사고 치지 않고 할머니께 잘해드리는 착한 손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출소하는 그날까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할머니! 작은 손자 올림.